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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11. 2024

어린 친구들

                                   

풋풋하고 귀엽던 아이들은 이제 스물여덟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제 회식하고 술을 마셔도, 늦게까지 야근을 해도 전 같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고 엄살들이었다. 언젠가부터 영양제를 선물로 주고받고, 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것들을 이젠 열심히 ‘주워 먹고 있다’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귀여운, 내게는 여전히 귀여운 녀석들은 어느새 듬직하고 건강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나를 쌤이라 불러주고, 새해가 되면, 또 추석이 되면 나보다 먼저 안부 인사를 전해오는 아이들. 아니 이제 어른들.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내내 고등학생에서 훌쩍 어른이 된 아이들이 지나온 세월 동안 내가 그만큼 늙었지, 싶다가도 또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적어도 그 시절에 내가 허투루 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      


“우리 학원에서 별명 없으면 찐따야.”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별명을 원했다. 작심하고 아이들을 별명으로 부르려던 것이 아니었다. 별명은 아주 우연한 순간에 만들어졌다.

학교에서 별명이 ‘개미핥기’라는 녀석은 줄여서 ‘개미’.

종알종알 쉬는 시간이면 귀엽게 말하길 좋아하는 녀석에겐 ‘참새’

수지라는 이름의 작고 앙증맞은 아이에겐 ‘뚜지’

떡을 좋아하는 예지는 ‘떡지’

이런 식이었다.     


고등학생이란 그렇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애매한 나이. 대화가 통하는 친구 같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 미성숙함이 드러나는 아이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꽤 긴 세월 미적분을, 기하와 벡터를 가르쳤다.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나 역시도 학교 다닐 땐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어쩌다 보니 그 싫어하던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는데, 뒤늦게 수학이 그 명료함이 맘에 들었다. 명확한 정답을 낼 수 있는 공식이 있다는 것이 퍽 좋았다. 숫자 하나로 답이 딱, 떨어질 때의 쾌감도 신이 났다. 물론 아이들은 대부분 알지 못했다, 내가 그 나이적에 그랬던 것처럼.     


어른이 된 아이들의 고민은 이제 예전과 달랐다. 회사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고 했다. 

아래 신입은 들어오면 나가기 바쁘고, 위에서는 이제 경력직이니 일을 자꾸 떠넘긴단다. 결국 여러 해 지나도 경력직이 된 신입이나 마찬가지라 이래저래 일만 쏟아진다고 불평했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는 녀석은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아버지를 봐야 하는 게 다소 힘들다고 했다. 어쩐지 독립을 못 한 기분이기도 하고, 회사와 집의 구분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오랜 연인과 헤어지고 소개팅도 해보았지만, 맘을 잡지 못한다는 말도 들었다. 맘이 있어도 새로운 사람을 선뜻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스물여덟 아이들의 이런저런 고민을 듣는다. 나의 그 나이를 생각해본다. 내 스물여덟은 어땠더라.

내 스물여덟이 참 멀다. 그 시절에 상상하지 못했던 오십 중반의 나이는 이렇게 빨리 왔는데, 돌아보는 그 시절은 어찌나 먼지. 지금도 그러려나. 세월이 또다시 한참 흐른 뒤에 돌아보면 지금은 또 얼마나 멀리 있을까.

헤어지며 아이들은 말했다. “쌤! 우리 또 뭉쳐요.”

건강하고, 싱그러운 스물여덟 들이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모습을 아련히 봤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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