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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13. 2024

늘임표를 연주해요

                             

이런저런 일로 바빴다며 M님이 두어 주 결석했다가 오랜만에 오카리나 수업에 나오셨다. 역시 그분이 나오시자 수업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카리나 선생님의 레슨이 끝나고 각자 연습하는 시간은 언제부터인가 M님이 우리 수업 조교가 되셨다. 이전에는 삼삼오오 떠들다가, 잠깐 연습하고, 또다시 떠들곤 했었다. 이제 수다를 떨다가도 M님이 한번 맞춰보자 하시면 다들 자연스럽게 오카리나를 손에 든다.


오랜 교직 생활에서 은퇴하신 M님은 활력이 넘친다. 꾀부리는 우리들을 복습, 연습에 이어 예습까지 시키시는 분이다. 역시 이런 분이 계셔야 잘 돌아가는 건 사실이다.     

“라쿠차 해보자!”라는 M님의 말씀에 다들 빵 터졌다.

“라쿠카라차에요.”

“알아듣는 내가 무섭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마치 여고생들이 모인 느낌이다.     


“이제 다음 곡 예습이야.” 하시는 말엔 다들 끄덕끄덕했다.

“역시 우리 M님 오신 거 맞네. 예습이다, 이제.”

다들 새로운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브람스의 왈츠다. 그런데 연주하다 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뭔가 박자가 안 맞아요.”

“똑같이 시작했는데, 왜 끝나는 건 다 달라요?”

“돌림노래가 돼버렸어.”     


다들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했다. 아무래도 악보의 ‘늘임표’가 원인인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늘임표 때문에 그 다음부터 박자가 다들 달라진 것 같아요. 악보에 늘임표가 세 개나 있어서요.”

한두 명 빼고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했다. 사실 오카리나를 한다고 해서 다들 악보를 볼 줄 아는 건 아니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은 너무 멀고, 뭐든 쓰지 않는 것을 잊는 것은 참 빠른 법이니까 말이다. 중급반 수강생들이야 공연에도 참여하니 다르겠지만, 기초반 수강생들은 이제 음을 짚는 데에 급급한 사람들이니 세세하게 악보 기호까지 확인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뭐야, 이게? 나는 웬 얼굴 그림이 있나 했어.”

“늘여서 한다고? 얼마나 늘이라는 거야?”

“학교 다닐 때 배웠겠지만 그때가 언제야. 이제 내 나이도 헷갈리는 판국에!”


본래 음보다 두세 배 길게 음을 끌어야 하는 것이 ‘늘임표’다. 늘임표가 생소한 수강생들은 그 기호하나를 놓고도 한참 동안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뭐든 핑곗거리만 생기면 웃는 사람들이다.      

늘임표를 다들 확인하고, 다시 브람스의 왈츠를 연주했다. 쿵짝짝, 쿵짝짝 왈츠 선율을 오카리나에 실었다. 선생님이 아직 가르쳐주지도 않은 것을 예습이랍시고 하고 있으니 제대로 맞을 리는 없다. 하지만 박자도 제각각이고, 음도 여러 갈래로 사방에서 부정확하게 나지만 우리 초급반의 왈츠 소리는 경쾌하게 교실을 가득 채웠다. 떠들 땐 소녀들같이 재잘재잘 그룹별로 잘도 떠드는 사람들이, 그래도 모여서 맞춰보자고 연습을 시작하면 꽤 진지해진다. 이게 뭐라고 혼자 연습할 때보다 더 긴장된다.


나는 악보의 늘임표를 잠시 물끄러미 봤다. 분명 4분음표, 한 박자의 음이지만 그 늘임표가 붙어있으면 연주자는 두 박자 혹은 세 박자까지도 늘려 연주한다. 어쩌면 우리들에게 오카리나는, 그리고 이렇게 무언가를 배우고 즐기는 일은 ‘늘임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악보 위를 뛰다가 잠시 ‘늘임표’를 만나는 순간인 것이다.     

브람스의 왈츠를 얼추 맞춰보고는 또다시 수다 타임이 시작됐다. M님은 오카리나 수업이 끝나면 바로 라인댄스를 추러 가신다고 한다. 매일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느라 늘 바쁜 분이다. 다음 주 수업이 있는 날은 새벽에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짐만 놓고 나오겠다고 하셔서 다들 놀랐다.

“이러니까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에 M님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바빠서 죽겠어.”     


이렇게 한참을 수다 떨고 나서 다시 연습하자고 모두 오카리나를 꺼내 들었다. 그때였다. 이번엔 E님이었다

“이번엔 치카치카 하는 거예요?” 

사방에서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까 M님은 라쿠차라더니 이제 E님은 치카치카에요?”

“라쿠카라차가 그렇게 발음이 힘들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다 알아들었어!”     


악보도 잘 못 보고, 맘처럼 손가락이 재빠르게 움직여주지도 않는다. 나이 들어도 꾸준히 숨쉬기운동만큼은 멈추지 않아야 하는데, 그 호흡도 자꾸 짧아지니 박자를 제대로 지켜 연주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인생의 늘임표를 함께 연주하는 우리 오카리나반은 이렇게 오늘도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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