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Feb 07. 2024

치킨은 언제

                             

“난 이 곡을 언제 끝낼지 알 수가 없어. 이 곡 하다가 의욕이 다 사라질 판이야.”

우리 오카리나반의 유일한 남자 수강생인 s 님이었다. ‘켄터키 옛집’이라는 곳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데 매번 우리는 웃었다.

“대체 켄터키 치킨은 언제 먹는 거예요? 튀기고는 있는 거예요?”

s님은 고개를 내저었다. 

“튀기기는커녕 아직 양념도 못 했어.”     


 s님이 오카리나 반에 등록하고, 일 년 가까이 매번 출석해 오카리나를 배우는 일이 그에겐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을 것 같다. 활달하고 분위기메이커지만 여자수강생들 사이에 청일점으로 오카리나를 부는 일이 쉽기만 했을 리가.

처음에 그분을 뵈었을 때는 다소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귀걸이를 했고, 파마기 있는 머리 스타일에, 자유분방한 옷차림. 그는 누가 봐도 은퇴한 연배였는데 외관상으로 꾸민 것은 자유로운 영혼의 느낌이랄까. 성격 역시 그래 보였다. 친화력은 갑이고, 종종 그분의 유머 덕에 수업 시간에는 웃음이 터졌다.   

  

초초초보수준의 너덧 명이 모인 그룹이었다. s님은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걸로 뭐 할 것도 아니고, 급하게 할 것도 없고, 남이랑 비교할 것도 없이 그냥 편하게 즐기면서 하면 최고지.”

그 말은 참 맞는 말이다. 일생 직장에서, 사회에서 경쟁하고, 실적을 쌓으며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니 할 수 있는 말이고, 공감할 수 있는 말.     


“치킨은 그만 튀기고 그냥 다음 곡으로 넘어가세요.”

“건너뛰어요.”

“자꾸 ‘켄터키 옛집’만 하시니까 치킨 먹고 싶잖아요.”

“저기 아파트 뒤에 전기구이 통닭 맛있어요. 사 먹어봐요.”

웃자고 들다가, 진지하게 치킨 이야기로 넘어가니 절로 침을 꿀꺽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유튜브에서 찾아서 그 곡을 많이 들어보세요. 아주 잘 알고 있는 노래가 아니라면, 많이 듣고 나서 연습하면 확실히 좀 낫더라고요.”

진지하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수강생도 있었다. 


옆에서 다들 한마디씩 거들지만 s님은 오늘도 꿋꿋이 ‘켄터키 옛집’을 연습했다.      

오카리나 수강생들은 그룹별로 다른 곡을 연습한다. 처음엔 사방에서 삑삑빽빽하니 정신이 없었는데, 이것도 적응되니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남들의 다양한 음속에서 신기하게 내 음은 또 잘 들린단 말이지.

우리 그룹이 연습하고 있는 곡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삽입곡인 A Time For Us다. 초보들이 하려니 사방에서 소위 삑사리가 난무한다. 그 와중에 가까이에서 s님이 연주하시는 ‘켄터키 옛집’의 가락이 간간이 섞여들었다.      


학교 다닐 때나 불러봤던 것 같은 그 ‘켄터키 옛집’을 나도 오카리나 수업에서 몇 달 전 배웠다. 가물거리는 기억이라 나도 그때 동영상을 찾아서 다시 노래를 들어봤는데, 어린 시절이라면 와닿지 않았을 가사들이 세월을 건너온 지금의 나에겐 참 가까이 느껴졌었다.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저 새는 긴 날을 노래 부를 때 옥수수는 벌써 익었다.

      마루를 구르며 노는 어린 것 세상을 모르고 노나

      어려운 시절이 닥쳐오리니 잘 쉬어라. 켄터키 옛집

      잘 쉬어라 쉬어 울지 말고 쉬어     


오카리나를 배우다 보면 초보답게 동요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끔은 ‘이곳이 이런 가사였나’ 싶은 순간이 많다. 그때는 알지 못했으나, 지금은 공감이 가는 가사들인 거다. 가사를 이해하게 된 걸까, 아니면 가사에 내 감정을 이입시키게 된 걸까. 

그 어느 쪽이든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겠다. 

이전 03화 그믐밤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