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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Feb 04. 2024

그믐밤의 기억

                                 

“얘만 머리카락이 다르네?”

어른들 옆에서 누워 까무룩 잠이 들었던 나는 삼촌의 그 말에 설핏 잠에서 깼다. 하지만 눈은 뜨지 않은 채, 내 머리를 만지며 삼촌이 했던 말을 생각하며 괜히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설 전날 밤의 일이다. 내가 어렸던 시절엔 ‘이중과세(二重過歲) 금지’라는 말로 음력설대신 양력설을 쇠는 것이 법이었다. 그러니 그날은 한해의 끝날이며, 다음날 새벽의 차례를 앞둔 밤이었다. 그믐날에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얘진다거나 하는 말을 믿을 나이는 지났지만 어쩐지 깨어있어야만 할듯한 밤이었다. 

애써 졸음을 쫓아봐도 눈꺼풀의 무게는 천근이었다. 부엌에선 엄마와 할머니가 차례 음식 준비로 바빴고, 마루에선 남자 어른들이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소리는 이쪽 귀로 들어와 저쪽 귀로 빠져나갔다. 그러면서도 잠결에 삼촌의 그 말만은 똑똑히 들렸다. 그리고 그 말은 마치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마음속에서 계속 남아돌고 돌았다. 얘만 머리카락이 다르네, 얘만 다르네….     


그 말은 그대로 재생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색을 바꾸고, 크기를 달리하며 맴돌았다. 

삼촌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한 말엔 어쩌면 엄청난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주워온 아이인 건가. 엄마한테 혼날 때면 늘 아빠가 은근히 편을 들어주며 감싸주셨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웃으며 말했었다. 

“너희 아빠가 밖에서 주워와서 너만 싸고도는 거야!”

생각해보면 무서운 소리인데, 말하는 엄마나 듣는 아빠나 모두 빙긋이 웃었다. 야단맞던 뒤끝인 나 역시 그 말에 입을 삐쭉거리며 엄마에게 눈을 흘기곤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엄마의 농담이 아닌 건지도 모른다. 나만 머리카락이 다르다잖아. 얘만 머리카락이 다르다는 게 무슨 말이야?     

어른이 된 이후에도 종종 그날 밤의 일을 생각하며 혼자 웃곤 했다. 한때는 심각했으나, 내가 정말 이 집 핏줄이 아닌 건가 고민하기엔 내가 봐도 너무 엄마를 빼다 박았기에 긴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출생의 남모를 비밀 같은 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그믐밤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차례 음식 준비로 바쁜 그믐밤의 풍경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아마도 그 밤 준비한 차례상은 할아버지의 차례상이었을 것이다.

그 설이 지나고 나서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우리는 매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차례를 모셨다. 고모가 돌아가셨고, 작은어머니가, 그리고 내 동생이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다. 자꾸 차례를 준비하는 가족보다 차례상을 받는, 그리운 가족들이 늘어갔다. 이제는 부모님도 모두 떠나시고, 뒤이어 작은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만 다른 형제들과 다르다며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그믐밤의 삼촌 역시 삼십여 년간 소식이 끊겼다가 어느 날 주민센터의 부고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삼촌의 부고를 마지막으로 이렇게 우리 윗세대의 모든 분이 떠나신 셈이다.      


설은 이제 예전 같지 않다. 해마다 명절이면 차례상을 준비하던 엄마와 달리 나는 차례며 제사상을 차리지 않는다. 비록 ‘우리 죽고 나면 절대 제사는 지내지 말고 성당에 미사만 신청하라’라는 엄마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엄마만큼 제대로 차례를 지낼 자신은 없다. 

차례를 지내지 않고, 오갈 친척이 하나도 없다는 건 누구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일이고, 또 누구에겐 안쓰러움의 대상이 되는 일이다. 

설이면 떡국차례를 지내고, 많지 않은 일가친척들이 모여앉아 갈비찜이며, 구운 조기를 먹었다. 세배를 하고 나면 세뱃돈을 받으며 신이 났다. 사촌들과는 투덕거리기도, 깔깔거리기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설이라면 모름지기 이렇게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북적거리며 차례상을 차리고, 온갖 기름 냄새가 진동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설엔, 이제 만날 수 없는 내 가족들이 있다. 바로 그 이유로 그 시절의 설을 잊지 못하고 늘 그리운 것이다.     


이제 설 연휴엔 주로 여행을 떠난다. 낯선 여행지 어디에선가 설을 맞는 기분은 아무렇지 않기도 하고, 한편 묘하기도 하다. 어제와 오늘이 같은 듯 다른, 그런 기분이랄까.

또 한 번의 설이 다가온다. 역시 이번 설에도 나는 다른 곳에 있을 예정이다. 낯선 곳에서도 그믐밤은 깊어가고, 설의 아침은 밝는다. 그 어디에서 그믐을 보내고 설을 맞이하든 나는 떠나간 가족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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