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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Feb 03. 2024

삶은 오카리나

                              

“저쪽 편에서 자꾸 갈라지는 소리가 나는데…?”

선생님이 강의실의 한쪽을 가리켰다.

“한 음으로 소리가 나지 않고 여러 개로 들리거든요.”

수강생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이번 학기에 등록하신 M님이 멋쩍게 웃으셨다.

“그게 말이에요, 제가 너무 오래 삶았더니 소리가 이상해졌어요.”

오카리나를 삶았다는 소리에 여기저기에서 다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 전 오카리나를 닦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누가 주부들 아니랄까 봐 오카리나의 겉은 그렇다 쳐도 속은 어떻게 닦는 건지, 닦지 않고 써도 되는 건지 의견이 분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카리나라는 악기는 입을 대고 숨을 불어넣어 연주한다. 고구마처럼 둥그런 악기 몸통 속에 이런저런 숨의 찌꺼기들이 붙어있을 테니 닦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말들이었다. 사실 선생님께서도 오카리나 불기 전에는 절대 간식을 먹지 말고, 혹 먹었다면 반드시 물로 입안을 헹구고 연주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니 수강생들의 악기 청소 고민도 이해가 가는 것이다.     


“이건 흙으로 구운 도자기잖아요. 뜨거운 물에 딱 30초만 담갔다가 빼서 소독하세요. 너무 오래 담그면 절대 안 돼요.”

뜨거운 물. 30초. 선생님에게 들은 악기 청소 방법은 이랬다. 자주 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물론 나처럼 게으르고, 깔끔과는 거리가 먼, 모양만 주부는 시도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충 그냥 쓸 때까지 쓰자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시작한 지 이제 몇 달 되지 않은 M님은 벌써 악기를 닦으신 것이다. 물론 그 ‘닦았다’라는 정도를 한참 넘어섰기에 문제였지만.     

“어떻게 해. 1분 넘게 담갔는데. ”

M님은 울상이 되었지만 다들 웃었다.

“30초라고 그랬잖아요! 까먹으셨어요?”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보탰다.

“30초 소리는 들었지. 기억했는데 아무래도 30초는 너무 짧은 것 같고, 1분 담그면 완벽하겠다 싶어서….”

M님의 ‘30초는 기억했지만, 어쩐지 1분 하면 더 완벽할 것 같았다’라는 말에 더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째 저걸. 그냥 삶았네, 삶았어.”     


오카리나로는 낮은 도부터 높은 파까지 소리를 낼 수 있다. 보통 높은 도까지는 그럭저럭 소리가 나는데 높은 레, 미, 파의 경우는 맑고 고운 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다. 오래 해오신 분들의 소리는 역시 다르지만, 아직 초보반의 경우에 높은 소리를 맑게 내기란 운에 맡겨야 하는 수준이니까 말이다. M님의 오카리나는 그나마 높은 레부터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분명 ‘삶기’전에는 안 그랬는데 피식피식 바람 새는 소리만 났다.     

“구입했던 이 악기사에 다시 보내면 새 악기살 때 30% 할인해줘요. 깨진 악기도 마찬가지고요. 이 악기는 보내고, 새것으로 다시 구입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M님은 울상이었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이걸로는 어쩔 수 없으니 새 악기를 구입하겠다고 했다. 괜한 짓을 했다고, 어쩌자고 1분이나 삶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끌탕을 했다.     


다시 수업이 이어지고 M님쪽의 삑삑 소리는 여전했다. 하지만 한참 수업하고 난 뒤 갑자기 M님이 말했다.

“소리가 좀 나아진 거 같아. 아까보다는 소리가 조금 더 나오는데…?”

또다시 여기저기서 웃음 섞인 말들이 날아들었다.

“아오지 탄광 보낸다니까 오카리나가 겁먹은 거 아니에요?”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부숴서 보내버린다고 해봐요. 더 겁먹게.”     


오카리나를 삶은 M 님 덕에 두 시간의 수업 시간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사실 M님은 정말 열정이 넘치는 분이다. 오카리나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그대로 가방을 던져두었다가 다음 주 수업에 가지고 오는 나란 사람도 있는데, M님은 매일 20분씩 집에서 연습하신다는 말에 놀랐다. 대단하시다는 내 말에 M님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재미있어!”

M님이 배우는 것은 역시 오카리나뿐이 아니었다. 캘리그라피, 탁구, 라인댄스, 우쿨렐레 등등 하나둘이 아니었다. 오랜 교직 생활에서 은퇴하시고 이제 맘껏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며 즐기는 삶이 보기 좋았다.


‘대한민국은 공주가 살린다’라는 말이 있대서 웃은 일이 있는데 그 ‘공주’란 바로 ‘공부하는 주부’라고 한다. 웃었지만, 나름 의미 있는 말이기도 하다. M님도 진정한 공주임이 분명하다.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갈 ‘삶은 오카리나’를 생각하니 좀 짠하기도 하지만, 다음 주엔 M님의 새 오카리나를 구경할 생각을 하니 기대되기도 한다. M님은 새 오카리나로 또 얼마나 의욕적인 악기 인생을 엮어 가시려나. 나도 이번 주에는 연습 좀 하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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