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Feb 22. 2024

잡담의 오카리나

                                 

“초급반 왜 이러십니까?”     

선생님의 말씀대로 오늘은 초급반이 단체로 결석이다. 줄줄이 카톡방에 ‘오늘 결석해요!’ 메시지가 떴다. 교실에는 청일점인 s님과 벌써 한해도 넘게 함께 글을 쓰고 있는 e님, 그리고 내가 초급반 출석생의 전부였다. 초급반 수강생은 나를 포함해 열면 가까이 되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 그 출석률 높던 분들이 모두 결석하시니 원년 초급멤버 셋이 모인 셈이다.     


오카리나 수강생은 이십 명이 넘지만, 공연에도 참여할 정도인 고급반과 내가 포함된 초급반은 따로 반을 나눠 수업한다. 대신 선생님이 양쪽 교실을 오가며 수업하시니 쉴 틈 없이 바쁘시다. 

자칭 원년 초급멤버의 특징이라면 ‘놀자 놀자, 탱자탱자’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우리에 뒤이어 합류한 초급 수강생들이 한참 의욕적으로 열심히 오카리나를 불어 재끼는 와중에 우리 셋은 늘 핑계처럼 말한다. 

-우리가 지금 전문연주자 될 거 아니잖아요? 가늘고 길게, 스트레스 같은 거 받지 말고 놀면서 재미로 하는 거지요.     


이런 멤버 셋만 달랑 교실에 모여앉았으니 당연히 열심히 연습할 리가 없다. 두 시간 수업 중 한 시간은 연습하고, 뒤의 한 시간은 선생님이 오셔서 레슨해주시는 것인데, 놀자멤버셋은 쉬지 않고 한 시간 동안 떠들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이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다. 몇 살 더 많고 적고는 큰 의미 없는 연배가 되었으니 관심사는 다들 비슷했다.      


“오랜 친구도 좋지만, 나이 들수록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워.”

공직에서 은퇴하고 서울에서 이사 내려오셨다는 s님은 오랜 취미인 바둑을 함께 하는 동호회를 결성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연히 근처의 기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마침 결이 맞는 취미 친구들과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때로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예의 갖춰 만나는 사람들이 더 편한 것 같아.”     


s님의 말에 공감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종종 한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는 나를 잘 안다. 동시에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맞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안다고 이야기하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가까워서 허물없는 것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너무 가까워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조금 멀찍이 떨어져 보는 사람이 알아채 주는 순간도 있으니까 말이다. 역시 누군가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데에는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그 어떤 것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간병, 노년의 요양병원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나이엔 어쩔 수 없는 화두이다. 게다가 나는 어제 다른 모임에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플랜 75’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라 더욱 그랬다. 75세부터 국가에서 단체 안락사를 권장한다는, 섬뜩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언젠가 정말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뒤섞이는 그 영화 말이다. 

젊었을 때엔 나이 드는 자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역시 훗날의 나보다는 젊다. 그러니 지금의 나 역시도 노년의 나를 실감하지는 못한다. 다만 떠나는 부모님을 보면서, 그때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지금은 조금씩 이해되기도 하는 순간을 대할 때마다 느낀다. 나도, 나이를 먹고 있구나.     

 

아프면 나만 아픈 것이고, 건강을 지키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며, 동시에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건강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해도 병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을 운에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늘 몸을 움직이고, 스스로 몸의 활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에 다 같이 끄덕끄덕하며 잡담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두 시간의 오카리나 수업에서 결국 오카리나를 분 것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며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봄이 오는가 싶던 날씨는 갑자기 겨울비가 내리며 차가워졌다. 밤이 지나면 비는 눈으로 바뀌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르게 봄을 기대했지만, 역시 아직은 2월이다. 봄은, 올 때가 되면 저절로 올 것이다.          

이전 04화 치킨은 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