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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01. 2024

지금이 맞는 걸까?

오십,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50대를 살아보니 재미있게 살겠다고 결심한다고 재미있게 사는 게 아니었다. 재미와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다 보니 재미있고, 하다 보니 행복한 것이지 재미있게 살겠다고 힘을 주면 재미없는 삶이 된다. 오늘 하루만 살자는 마음으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말하고 움직이는 삶, 물질적인 부를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말하고 움직이는 데 걸림이 없을 정도면 고마워하는 삶은 잘 죽기 위한 1등 상품이다. 오늘만 살며 재미를 느끼다가 가볍게 세상 소풍을 마치고 싶다.>     


자기계발서라든지, 계몽(?)의 향기가 나는 책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제목에 이끌렸다. 나 역시 피해갈 수 없는 오십이어서일까. 생각해보면 스물도, 서른도, 마흔도 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획을 긋는 시기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십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일생 해온 일에서 물러나 퇴직이 멀지 않은 나이라서, 혹은 젊은 날을 지나 이제 노년으로 가는 준비를 하는 시기라서. 그도 아니면 백세시대에 오십이라는 숫자가 주는 반환점의 상징성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그런 것이 오십인 걸까.     


쉽게 읽히지만, 공감이 가는 문장들이 많고, 그래서인지 읽다 보면 혼자 끄덕끄덕하기도 한다. 오늘만 있는 것처럼 가볍고, 재미있게 살라는 부분도 와닿았고, 선택 앞에 너무 어렵고, 무겁게 굴지 말라는 말도 맘에 들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야 어디 그런가. 

오십이면 직장을 내려놓을 날은 가깝고, 그만큼 노년이 멀리 있지 않다. 일정한 수입이 들어오는 일을 그만두고, 장수의 시대에 들어선 긴 노년을 보낼 준비도 필요하다. 물론 자신의 노년이 길지 짧을지 그것을 누가 안단 말인가. 기대보다 짧을지 모르니 지금을 즐기고 싶다가, 때로는 남은 길이 아직 많다면 오늘 전력 질주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 싶기도 하다. 그 누구도 명쾌한 대답을 해줄 수 없는 난제이다. 인생의 남은 모래시계를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빠는 일생 군인으로 살았다. 젊은 시절 우스갯소리처럼 엄마가 하던 말은 ‘우린 나중에 늙으면 연금만 받고도 살수있다’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주로 우리가 행여 제 앞가림을 못하고 살까 걱정할 때 하는 단골멘트였다. ‘우리는 걱정하지 마라 ’이면서, 동시에 ‘너희들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해야 한다’의 뜻이기도 하던 그 말은 나중에는 거꾸로 우리가 엄마를 놀리기도 하는 웃음 포인트였다. 

알뜰한 엄마에게 그 연금만이 노후 대비의 전부였을 리 없다. 아끼고, 또 아끼며 엄마는 말했다. 

“늙어서 자식한테 신세 지면 절대 안 되지. 우리는 걱정하지 마라.”     


하도 들어 귀에 딱지가 앉겠다며 엄마를 놀리던 그 말을 이해한 건 두 분이 늙고 병든 이후였다. 사람은 누군가 내어놓은 길을 보고 길잡이로 삼는다. 내게도 부모님은 여전한 인생의 길잡이다. 부모님과 달리 내게는 3대 연금이라는 공무원, 군인, 사학 연금 중 어느 것도 해당 사항은 없지만,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잊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때로 생각한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얼마나 희생해야 할까. 내게 남은 미래가 어느 만큼의 길이로 뻗어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지금 보다 시원한 그늘아래서 쉬고 싶고, 지금 안락한 잠자리에 눕고 싶으며, 지금 더 큰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그런데 미래를 위해서 과연 어느 만큼 타협해야 하는지 이것은 늘 난제이다. 그 누구에게 물어도 대답해줄 수 없다.


젊은 날엔 인생이 길다고만 생각했다. 오십이 넘은 지금은 자신에게 말한다. “그럴 리가!”

남은 생은 더 빠를 것이다. 그 빨리 흐르는 생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내게 물을 것이다. 도대체 그 적정한 선은 어디까지인 거야, 라고.

다만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답은 하나인 것 같다. 즐거운 오늘의 내가 있어야 행복한 내일의 나도 있을 거라는 것. 물론 지금을 위한 것과 미래를 위한 것의 적절한 분배를 고민하는 삶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런 고민을 하는 자체가 어쩌면 인생인지도 모를 일이다.      


<선택은 내 삶에서 나만의 길을 만든다. 틀린 길은 없다. 서로 다른 개성의 길이 있을 뿐이다. 결혼식을 할 때 돈을 많이 쓰는데 이때 하는 말이 ‘딱 한 번 하는 결혼인데’, '처음 입는 예복인데'이다. 생각해 보면 결혼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일은 우리가 처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선택이 항상 문제가 된다. 가볍게 선택하면 좋겠다.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결과를 기꺼이 책임지면 된다. 깃털처럼 가볍게 선택하며 살 것인가, 바위처럼 무겁게 선택하며 살 것인가.

이 또한 내 선택에 달려 있다.>     


책장을 덮으며 가장 맘에 든 부분은 ‘선택의 가벼움’에 대한 것이었다. 막 살고, 대충 아무거나 집어 들라는 것이야 아니겠지만 너무 무겁고 힘들게만 생각하지 않아도 될런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참 쉽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가벼운 맘으로 세상을 사는 연습은 해보고 싶어진다.

그런데….‘이제쯤은 가벼워져도 되지 않겠어.’ 라든가, ‘이제쯤은 좀 풀어져도 되지 않겠어’라고 하는 그 나이가 지금이긴 한 걸까. 오십이 넘어도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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