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리나 권태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받은 6년 개근상은 상장이 아니라 두툼한 나무에 동판을 덧댄 상패였다. 한 학년에 두 반밖에 없는 작은 학교긴 했지만, 지금과는 달리 한 반 인원이 60여 명은 되던 그 시절에 백 명이 넘는 졸업생 중 그 상패를 받은 건 몇 되지 않았다. 그중에 한 명이 바로 나였다. 속으론 으슥했지만 그건 나의 마음일 뿐 친구들도, 어른들도 6년 개근 상패엔 무덤덤했다.
공부도, 특기도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이처럼 6년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성실하긴 했던 나는 취미로 배우는 오카리나 수업에도 거의 빠져본 적이 없다. 비록 집에 와서 연습 따위는 하지 않는 수강생이긴 하지만 적어도 꼬박꼬박 수업엔 참석했다.
그런데 지난 3주간 나는 내리 오카리나 수업에 빠졌다. 시작한 지 일 년 반이 넘어가는데 이처럼 길게 수업을 빠져본 적이 없다.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처럼 나의 결석에도 마찬가지로 핑계는 있다. 감기 기운이 좀 있었고, 추석 명절이 끼어있었으며, 절대 빠질 수 없는 자리엘 가야 했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몇 번 반복되고 나면 새로운 상황에 익숙해진다. 그건 반복되는 결석에도 해당하는 말인지라 처음엔 맘이 불편하더니 두 번 세 번 반복되자 이제 다시 수업에 나가는 것이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내 안의 나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차피 그저 취미일 뿐이잖아. 내가 오카리나를 배워서 전문연주자 할 것도 아닌데 그냥 쉬엄쉬엄하자. 스트레스받으면서 취미생활을 할 일은 아니지.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한쪽 구석에선 또 다른 마음이 솟았다.
수강료 냈잖아! 빠지면 너만 손해야. 사놓은 오카리나는 어쩔 거야, 버려? 무를 썰겠다고 칼을 뽑으면 뭐라도 썰어야 하는 것 아니냐?
결국 후자의 마음이 좀 더 커진 나는 주섬주섬 오카리나를 챙겨 들고 한 달 만에 수업에 나갔다. 마침 새로운 학기 수업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심기일전해서 악보를 펴고, 오카리나를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인지라 맘 같지 않았다. 손가락은 자꾸 엉뚱한 구멍을 누르거나 열었다. 가뜩이나 잘 조절되지 않던 호흡은 더욱 제멋대로였다. 거기다가 새로 받은 악보는 듣도 보도 못한 곡이어서 난감했다. 정말 열심히, 새롭게 시작해보려 했는데 오카리나가 재미없어지고 마음은 시들해졌다.
.“자기, 지금 재미없어서 그러지?”
그런 내 모습을 보시곤 건너편에 앉아 계시던 M님이 나를 보며 웃으셨다.
“내가 지금 딱 그래. 너무 빠졌더니 수업이 도통 재미없다, 큰일이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M님 역시 나처럼 삼 주 만에 수업에 나온다고 하셨다. 이런, 나만 불성실한 수강생이 아니었던 거다.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던 친한 몇 수강생들이 M님과 내게 다들 한마디씩 했다.
“빠지면 안 돼요. 그만둬도 절대 안 돼요. 무조건 우리 계속 같이 하는 거예요.”
마침 자유곡을 정해 연말의 발표회 준비를 시작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M님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 그거 하자. ‘바람처럼’이라는 그 곡, 전에 공연팀들이 연습하는 거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 곡이라도 맘에 들어야 좀 재미가 있을 것 아니야.”
이리하여 초급과 중급 그 사이 어딘가의 애매하고,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진 우리 다섯은 ‘바람처럼’이라는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들어본 적도 없던 곡을 연습하려니 재미가 없어서, 안 그래도 이걸 계속해도 되는 걸까 싶었는데 ‘바람처럼’이라는 곡은 달랐다.
오카리나를 시작한 것은 일 년 반 전이다. 그나마 더 오래전 잠깐 불어본 덕에 도부터 솔까지는 알고 시작했다. 그즈음에 나 역시 그 곡을 공연팀들이 연습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처음 오카리나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서의 일이니 그분들이 연습하는 걸 들으며 너무 좋구나, 싶던 기억.
그때엔 내가 연주하는 걸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이제 어설프지만 끝까지 연주할 수는 있었다. 역시 이건 시간의 힘일까. M님처럼 나 역시도 그 곡이 참 좋았기에 언젠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언젠가는 바로 지금인 모양이다.
“어때, 재밌지? 이제 이렇게 쭉 가는 거야.”
M님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대답했다.
“이 곡이 살린 것 같아요.”
다 같이 웃다가 우리 다섯은 이참에 단톡방을 만들기로 했다. 분위기메이커인 G님이 귀엽게 외쳤다.
“누구 하나 그만두지 못하게 얼른 단톡방을 만들어요. 이왕 하는 거 재미있게 담에는 우리 끝나고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해요.”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카톡 알람이 울렸다. “매3 오카리나”라고 단톡방 이름까지 달아 G님이 우리 다섯이 모여앉는 단톡방을 만든 것이다. 웃음이 났다. 나는 아무래도 앞으로도 좀 더 오래 오카리나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