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 비건라면 정면을 먹고
요새 유독 비건이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물론 내가 비건 뷰티 브랜드를 운영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처음 브랜드를 기획할 때와 1년 정도 지난 지금을 비교하면 그 빈도가 훨씬 높다. 예능 프로인 <윤스테이>에서도 식사 선택지에 비건 메뉴를 넣었다. 외국인이 손님인 프로그램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비건에 대한 존중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된다. 기업들에서도 비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틀 전 처음으로 먹어본 풀무원의 정면이라는 라면을 비롯해서, 각종 비건 식품들이 나오고 있다. 고기 음식의 대표주자인 햄버거에서도 롯데리아와 버거킹에서 식물성 패티를 이용한 제품이 나오기도 했다.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비건"이라는 말보다는 "채식주의자" 또는 "베지테리언"이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바라보는 채식주의자는 두 종류로 구분했다.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이상으로 깊게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러고 대부분 "쯧, 저러다가 영양실조 걸려서 병난다." 혹은 "식물은 생명 아니야? 모순적인 사람들이네."와 같은 부정적인 시선과 조롱이 가득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위와 같은 경우가 현실 세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비거니즘"→"채식"→"동물 보호" 또는 "비거니즘"→"채식"→"건강에 좋은 것" 정도 수준에 그친다.
기업은 냉정하다. 돈이 되는 곳에 손을 내민다. 기업에서 판단하는 "돈이 되는 곳"이란 잠재적 소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소비자들이 돈을 얼마나 쓸 것인가의 문제이다. 지속 가능성의 중요성은 옛날부터 알았겠지만 기업들이 이제서야 실천하고 그런 제품들을 내는 것은, 소비자들이 이제는 제품을 선택할 때 이러한 문제들을 고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기업의 윤리성이 높아졌다기보다는 그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숫자가 인격이고, 윤리다. 지구의 환경보다는 당장의 경영 환경이 훨씬 더 중요하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보다는 경영의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임원이라 불리는 경영진은 집에 있는 어린 자녀를 위해서라도 올해 회사와 재계약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뷰티라는 것은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의 관심이 덜하다. 그래서 비건이라는 개념이 아직까지 미미하다. 그리고 중국 매출이 굉장히 중요한 뷰티 업계에서는 비거니즘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기 더욱 어렵다.(참고로 중국 수출을 위해서는 대부분 동물 실험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출과 이익이 중요한 대기업에서 내가 운영하는 비건 브랜드는 홀대받는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보다는 당장의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케팅 돈 써가면서 국내에서 애써서 장사해봤자, 중국에 한 번 보내면 그 매출과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 예산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없애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정작 유통 채널의 MD들로부터는 환대와 입점 요청을 받는 이상한 상황이다. 유통사에서는 분명 본인들 돈 쓰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를 유행 시키려면 대기업 제조사의 자본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정작 우리 브랜드는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 브랜드들보다 쓸 수 있는 돈이 없다. 웃픈 상황이다.
그러면 현재 비건 뷰티 브랜드들은 어떨까? 아무리 스타트업의 열정 가득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먹고살려면 돈은 벌어야 한다. 투자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더 큰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수익을 내야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비거니즘의 가치관을 홍보하는 마케팅보다는 비거니즘을 활용한 눈 속임 광고가 많다. 식물 성분이라서 피부에 좋다든지, 자극이 없다고 한다. 소비자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비거니즘은 효능이 아니라, 선택에서의 가치관과 윤리의 문제이다. 참고로 건강에 좋지 않은 기름에 튀긴 감자 칩도 비건 식품이다.
내가 바라는 뷰티 업계도 비건에 대한 시장 환경이 진화했으면 좋겠다. 비건을 마치 하나의 효능이나 저자극 제품처럼 인식되기보다는,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가치관에 맞는 선택지를 줄 수 있는 제품들로 인식되었으면 좋겠다. 그 제품들 안에서 미백 제품도 있고, 안티에이징 제품도 있고, 재생 제품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소비자의 비건에 대한 인식과 인지 수준이 발전할 수 있도록 나를 비롯한 많은 브랜드 마케터들, 유통사들이 힘쓰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비건을 지향하면서 2주간 살고 있는 나로서는 비건 식품 제품들이 나오는 상황이 고맙다. 라면과 햄버거를 정말 좋아하기에 꽤나 좋은 대체재를 찾은 셈이다. 건강식은 아니니 가끔 못 참겠을 때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