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도 과거에 했던 반응
채식을 지향한지 이제 일주일이 되고, 다시 또 금요일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채식을 지향한다고 했을 때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생각해 보면 과거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는 채식을 하게 된 이유를 물어본다. 두 번째는 기운 안 빠지냐, 배고프지는 않냐, 살이 빠지냐 등의 나의 건강 상태를 물어본다. 세 번째는 먹을 게 있냐는 것이다.(특히 회사 급식은 주로 모든 음식이 고기반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때 깊이 있는 대답은 지양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질문이 아닌 경우가 많고, 나도 이제 겨우 2주가 조금 안된 것이라 아직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나도 적절한 대답을 위해서는 책을 읽는 시간과, 사유의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러한 질문은 대체로 굉장히 방어적인 비언어적 태도,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약간의 공격적인 태도로 물어본다. 그 이유가 뭘까 오늘 생각해 봤다. 나는 과거에 왜 그랬을까? 부끄러운 고백을 할 게 있다. 나에게 비거니즘의 영향을 준 동기의 SNS를 볼 때면 처음엔 불편했다. 분명 주변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피드임에도 내가 불편해한 이유가 뭐였을까. 바로 죄책감이고,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비건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느꼈다. 또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육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정확히는 아니지만, 느낌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나도 그 상태가 굉장히 오래갔다. 그러다가 여러 이유가 겹쳐서 최근에 그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트위치에서 활동하는 한 스트리머의 유튜브를 봤다. 버거킹의 식물성 패티가 들어간 플랜트 와퍼 버거 리뷰였다. 스트리머는 굉장히 기대 이상으로 맛있고, 이러한 시도들이 동물 복지와 환경적으로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느껴진다며 좋은 시도라고 말하고 맛있게 먹었다. 웃긴 예시도 들었다. 본인이 일부러 돈 주고 찾지는 않을 것 같지만, 누군가 햄버거를 여러 가지를 섞어서 사 왔는데, 식물성 패티 버거를 피하기 위해 눈치 볼 필요 없이 선뜻 나서서 골라 먹어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 화면에는 실시간 채팅도 함께 올라왔다. 그 스트리머가 평소 개그의 이미지가 있어서, 채팅도 그런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유독 뾰족한 느낌의 채팅이 많았다. 채식에 대한 조롱 섞인 채팅도 많았다.
그 스트리머는 육식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으며, 실제 고기 패티의 햄버거보다 더 맛있다고 비교를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소에 채식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 공격적인 채팅들이 올라올까? 실제 오프라인에서도 말은 못 하지만 속마음은 저렇겠지?라고 생각하니 소름 돋을 정도였다.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가 공격적인 채팅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건을 지향하고 난 뒤, 이제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에게 하는 사람들의 질문의 내용은 똑같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내용들이 바뀌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의 건강의 부정적인 면을 걱정하기보다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먹을 게 있냐는 말보다는 맛있는 채식 메뉴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문득 어릴 때 먹던 어머니가 해주던 감자채 볶음이 먹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