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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배우 Feb 21. 2022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열심"이 모두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ep9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연극을 할 때였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20대 시절은 돈에 대한 무시와 꿈에 대한 찬양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의 30대는 달라져있을 거야.” 스스로 다독이며 20대의 삶을 버텼다.

 매일 왕복 두 시간 반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차비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연기에 집중해야 하니 정기적은 알바는 하지 않았다. 시간이 맞으면 단기 알바를 나가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5살 어린 동기 동생이 극단 생활을 함께 하며 정기적인 알바를 했는데, 그 동생에게 대단하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철이 없었는가?

 하지만 그 시절 돈이 없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달라질 미래를 기대하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님과 함께 극단을 창단했고, 나의 위치는 중간이였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 그리고 선배님들이 있었다. 공연을 올려야 했고, 주연을 맡게 되었다. 그러면서 제작에도 관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할 만했다. 내가 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연극을 할 때라 말하냐면, 그 시절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연기를 못 한다 이야기를 들어도 단 한 번도 내가 배우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연극을 하면서 매일 욕을 먹었고, 매일 술을 마셨고, 매일 울었다.

 타인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되다 보니, 나 또한 나를 함부로 대하게 되고, 나 또한 나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가장 힘들었다. 나를 믿지 못하는 것. 내가 그렇게 갈망하고 꿈꾸던 배우에 대해서 처음으로 포기해야겠단 생각이 올라온 것. 그것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연습 중간에는 배역까지 잘렸다. 얼마나 나의 자존감이 떨어졌겠는가? 좌절의 연속이었다. 매일 '나는 배우가 될 수 없어.' 스스로 옥죄였다. 지금도 힘든데 미래는 더 힘들 거 같은 마음이 올라왔다. 환경적인 요소를 떠나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 나를 가장 괴롭고 힘들게 만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결국 대학로를 도망쳤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나를 책임지지 않는 말들에 대해서 휘둘릴 필요가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었고, 그 누가 나를 함부로 대하더라도 나는 나를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 말자란 다짐을 했다. 나의 감정을 온전히 책임지는 건 나밖에 없다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막연하게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서 반박할 수 있게 연기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연기 서적들을 다시 파기 시작했고, 활동하는 배우들의 인터뷰를 찾아 읽으며 나는 연기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영화나 드라마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더 분석하고 그 분석한 것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나에 대한 믿음이 쌓이기 시작했다.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 확실히 깨달은 건, 저 사람의 말에 휘둘릴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다양한 루트로 내가 계속해서 연기를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 구축해나고 있다.

 이제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는 더 이상 인연을 이어나가지 않을 수 있는 배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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