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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진 Nov 11. 2022

쿨한 월급루팡들, 실화냐

SNS에서 월급루팡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글을 보았다.

월급루팡. 요즘은 줄여서 '월루'라고도 많이 부르더라. 그리고 특이한 것이 요즘은 월급루팡이라는 말을 사람을 지칭하는 것에만 쓰지 않았다. '일을 하지 않는 행위'의 동사로도 많이 쓰고 있었다. 


월급루팡이라는 단어 자체는 꽤 오래된 단어라 별로 생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SNS 게시글을 통해 본 '오늘 같이 월루 하실 분~' '월루들 모여라~'라고 말하며 함께 월급루팡 짓을 할 사람을 찾는 오픈 채팅방 멤버를 모집 글은, 내게 너무 생소했다.




개인적으로 '월급루팡이 되는 순간'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의적이던 타의적이던 월급루팡이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홀딩, 연기된다거나 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착수하기까지 업무 공백기간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나 조직 운영을 하다 보면 많이 느낀다. 지금 당장은 일이 없는데, 내일 어찌 될지 모르니 새로운 일을 줄 수 없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위에 말한 것과 같이 구조적인 이유로 월급루팡이 되기도 하지만 상대적인 이유로 월급루팡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일이 많은데, 일하지 않는 상사의 모습을 볼 때 '저 사람은 월급을 받아갈 자격이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례야 너무 많고, 반대로 일하는 동료들이 정말 미친 듯이 일하는 것을 볼 때 '나는 월급을 받아갈 자격이 있는가'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월급루팡이 나쁘다고 무작정 매도하기에는 예측/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너무 많다.


다만,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월급루팡이 되려는 태도'와 '월급루팡이 사회생활의 기준이 되는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다. 제목에 써둔 '쿨한 월급루팡' 같은 느낌 말이다.


네이버/커뮤니티 등에서 '월급루팡', '월루'를 검색하면, 다양한 글과 댓글과 대댓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월급루팡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녹아져 있다.


상사가 월급루팡이라 너무 힘들다는 글, 우리 직원 중에 월급루팡이 많은 것 같아 걱정이라는 글, 한 달 동안 하는 일 없이 월급루팡이 되어 불안하다는 글, 회사에서 월급루팡 하며 공부하고 있다는 글, 월급루팡이 되고 싶다는 글.


그중 가장 눈 길을 끈 것은 요즘 월급 루팡이 되어 불안하다는 글에 달린 '내 회사도 아닌데 뭐', '님의 시간을 그 장소에서 쓰고 있는데 그게 왜 월급루팡이죠?', '출근한 것만으로 밥값 한 거임' 등. 출근해서 일하지 않는 것이 떳떳하고 당연하다는 태도의 대댓글이었다. 


잘 모르겠다. 이게 맞는 것일까? 세상이 많이 바뀐 것일까? 아니, 시대를 떠나 이게 정말 맞나?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이나 알바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월급루팡일 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생각해보니 직장생활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대학교 조별과제를 하면 꼭 무임승차하는 학점루팡들이 직장생활로 치면 월급루팡이니까..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월급루팡이 되어 회사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올까? 월급루팡의 삶이 회사생활의 기준이 된다면, 월급루팡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회사생활을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질까? 


월급루팡으로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월급루팡에게 욕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떳떳하고 쿨한 월급루팡들을 보며 본인을 의심하고 자괴감에 빠질 것 같은 사람을 위해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저 사람에는 나도 포함된다. 다들 번아웃이나 현타가 오면 다른 사람/회사와 비교하며 '저런 삶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일을 하는 것이 맞을까', '조금 더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팀원을 그렇게 다그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니까.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한창 상승세를 그릴 때 벼락거지라는 말이 생겼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남들이 부자가 되면서 기준이 바뀌어 나는 상대적으로 거지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쿨한 월급루팡들이 떳떳하게 말하는 글들이 많아지면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과 삶이 존재한다. 


나는 살아가는 방법에 좋고, 나쁘고, 정답이 있고, 오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있듯,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바보가 아니다. 잘못하고 있지 않다. 가슴을 펴야 한다.

열심히 한 사람이 본인을 흑우 취급하며 사는 세상이라니.

난, 상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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