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섭섭함과 서운함이라면, 나는 누구에게 그리도 섭섭했던 것일까
"번아웃은 섭섭함과 서운함 때문이다."
트레바리 모임 중 들은 말 하나가 고막을 관통하고 머릿속에 박혔다.
모두가 번아웃을 개인의 에너지 소진, 방전, 피로 누적으로 인해 발생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서운함과 섭섭함이 번아웃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로,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님인 최인철 교수님의 중앙일보 칼럼 '피로·냉소·무기력보다 무서운 섭섭함'에 나오는 말이다.
번아웃을 개인의 관점이 아닌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각이 너무나도 신기해서였을까? 번아웃을 토로하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었을까? 이 말은 계속해서 내 궁금증을 자극했고 칼럼까지 찾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번아웃이 크게 왔었던 그때 나는 누구에게 그렇게 서운했는지 곱씹어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의 나는, 세상 모든 것에 서운했다."
칼럼을 읽으면서 공감하지 못했던 것은 하나다. 번아웃이 온 구성원을 위해 공정하지 못한 평가를 개선하고, 리더가 행동을 바꾸고, 조직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번아웃이 관계로 인해 발생하고, 번아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 안 되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번아웃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번아웃이 왔던 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섭섭해할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업무 평가, 리더, 동료, 조직 시스템에 대해 큰 섭섭함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는 조직에 가지고 있던 섭섭함은 점점 해소되고 있던 상태였었다. 그런데,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섭섭함이 갑자기 물 밀듯이 밀려왔다. 가족에 대한 섭섭함이 해소될 즈음엔 대한민국 사회에 섭섭했고, 그 뒤엔 나약한 나 자신에게 까지 섭섭해지더라. 아마 마지막에 찾아온 것은 자괴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번아웃이 와본 사람은 알겠지만 번아웃이 온 상황에서는 위로가 위로로 들리지 않고, 주변에서 편의를 아무리 봐줘도 모자라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위로와 편의에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번아웃을 해소하는 것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번아웃이 결국 개인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준이 다르고, 멘탈의 강도가 다르고, 감정이 다치는 이유가 다르고,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공정한 평가에도 섭섭함을 느끼고, 어떤 잘 짜인 조직 시스템에도 섭섭함을 느낀다. 동일한 리더의 행동에 누구는 섭섭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만족한다. 그래서 사람이다. 결국, 번아웃은 남, 밖, 환경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꽤나 큰 번아웃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 번아웃의 이유와 정도가 별거 아닌 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은 남이고 내가 아니니까. 여기에 섭섭함을 느낀다면, 이는 또 다른 번아웃으로 찾아올 것이다.
번아웃이 섭섭함에서 오는 것이라면,
번아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의 의연한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