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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진 Oct 31. 2023

3년 만에 대학 동기, 반년 만에 중학교 친구랑 한 잔

시월 넷째 주, 마실 구실.

"지난주에 며칠이나 마셨어?"

"월화수목금토. 6일."


"일요일 빼고 6일 내내 마셨어? 왜 그렇게 마셨어?"

"월화는 그냥..? 아! 이두나 보는데 수지가 너무 예뻐서 한잔 안 할 수가 없더라! 수요일은 PT 끝난 기념으로 동네 형님들이랑 마셨고! 목요일일이 진짜 그냥.. 금요일은 독서 모임 번개 하는 날이라 파티룸 잡고 가져간 술 몇 병만 가볍게 먹었어."

"토요일 저녁에는 대학교 친구들이랑 문래에서 한 잔 하고, 중학교 친구가 자기 와이프 외박한다고.. 자기 집으로 모이래서 밤엔 글로 넘어가서 좀 늦게까지 먹었어. 중학교 애들도 반년만에 봤네"


"생각해 보니, 어젯밤에 와인 한 잔 한 거 같은데, 왜 6일이야?"

"어제는 12시 넘어서 월요일로 쳐야지."

"뭐야, 토요일에 친구 만나서 새벽 5시까지 먹었다며? 그럼 그거 뭐야."

"아 맞네."




<23.10.23~27>

일주일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안 먹어도 되는데 먹었다. 월요일도 그냥, 화요일도 그냥, 목요일도 그냥. 습관적으로 집에 있는 컵에 술을 따라 TV 앞으로 가져갔고, 습관적으로 음식점에서 저녁 메뉴를 주문하면서 "여기 새로도 한 병 주세요"를 외쳤다. 이것도 습관일지 모르겠지만.. 저녁 메뉴를 시킬 때 소주를 동시에 시키지 않고 따로 주문하는 이유는.. 오늘은 참아야지 싶은 본능 때문인 걸까?


수요일에는 PT가 끝나 술이 당겼다. 마침 전 직장 동료들도 술이 당겼나 보다. 술 먹으며 늘 하던 이야기를 했다. 금요일에는 트레바리 번개가 있었다. 수요일과 금요일, 사람은 달랐지만 하는 이야기는 같았다.


"저 사실.."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품고 있던 고민, 걱정, 불만이나 혼자서만 생각하던 미래에 대한 사업, 목표가 어떤지를 슬며시 이야기한다. 그럼 거기에 "그 거 뭔지 알아요."로 시작해서 "~건 어떨까요?"나 "~라고 저는 생각해요."로 끝내며 말의 꼬리의 꼬리를 물어가며 이야기한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이야기도 습관적이다.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자주 나온다. "너무 좋다는 이야기~" "잘 될 것이라는 이야기"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 마음 다 이해한다는 이야기" 등등이 오고 간다.


항상 비슷한 이야기라 질릴 법도 한데, 사실 질리지 않는다. 답을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니다. 진짜 답을 모르겠어서 술자리에서 답을 찾고자 묻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냥 다 고픈 거다. 술이 고프듯, 공감이 고프고, 위로가 고프고, 응원이 고프고, 칭찬이 고픈 거다. 뭔가 많이 고팠던 한 주였던 것일까? 꼼꼼하게도 챙겨 먹었다.



<2023. 10. 28.>

처음 하는 것이 많았던 날. 많은 낯섦을 마주한 날. 굳이 정리하자면 그랬다.


저녁 약속이 겹쳤다. 3년 만에 대학 동기들을 보기로 했는데, 그전에 중학교 친구들과 잡았던 일정을 결국 조정하지 못했다. 저녁 6시에 모여서 8시에 가야 했다. 가는 것만 2시간인데, 2시간만 볼 수 있다니. 솔직히 갈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미루자고 해볼까 생각했다. 근데, 오늘을 놓치면 또 1~2년 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1시에 나와버렸다. 가기 귀찮다는 마음이 커지기 전에.


문래동을 처음 가본 것은 아니지만, 문래 창작촌은 처음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을지로, 성수, 망원동 등 나는 사람이 빽빽한 핫플을 찾아가기보다는 피해 다니기 바빴다.


느낌은 을지로와 비슷했다. 오른쪽에는 줄이 길게 늘어 선 에스프레소 바가 있었고, 맞은편에서 70세는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불꽃을 튀기며 금속을 깎고 있었다. 간판은 제일기공인데 가게는 스페인 음식점이다. 낯설었다. 특히 공기가 낯설었다. 공장 거리 특유의 기름, 먼지, 쇠냄새가 나는 와중 중간중간 커피 향, 피자냄새, 타코냄새가 섞여 코로 들어왔다.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무 데나 들어갈 수 없었다. 대부분이 혼자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곳들이었다.


그러다가 무려 두 명이나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바를 발견했고, 난생처음 바에서 위스키를 잔으로 주문했다. 늘 궁금해했던 기원 배치3. 처음 마셔보는 국산 위스키였다.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입에 머금어 삼켰다. 맛을 되짚어보려 입 맛을 쩝쩝 두 번 다시는 찰나.. 친구가 왔고 남은 위스키를 원샷했다. 그렇게 나의 첫 바에서 위스키 마시기는 뚝딱거리며 마무리되었다.


아까웠지만 아깝지 않았다. 3년 만에 친구를 만났으니까.



<2023. 10. 28~29>

대학 동기들과 근황을 주고받고 2시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아쉬웠는데, 아쉬울 새가 없었다. 중학교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쉬지 않고 마셨다. 즐거움이 오래가기를 바랐고, 정신없이 오늘을 끝내지 않기 위해, 머리까지 굴려 가면서 마셨다. 취할 거 같으면 그만 먹고, 꺾어먹고, 다트도 치고.. 새벽 5시까지 오늘이 끝나지 못하게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놓았다. 가을이었다.


바에서 맥주를 처음 입에 댄 것이 4시. 이후 새벽 5시까지 마셨다. 맥주, 위스키, 소주, 보드카, 그리고 다시 소주, 마무리는 내가 집에서 가져온 직접 담근 짝퉁 위스키였다. 마시자마자 낮에 먹은 기원이 생각났다. 휴.




기억에 남는 술.


[술담화 단무지]

색깔 때문일까? 마시자마자 단무지 국물을 먹는 것 같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근주스 같이 채소 음료를 먹는 듯한 느낌이 많이 난다는 평도 있었다. 기분 탓일까 떡볶이나 만두, 치킨이랑 먹었을 때 확실히 달콤 상큼하니 맛있었다. 노란 색깔은 치자로 냈다고 들었는데, 왜 단무지 국물 맛이 나는 걸까. 맞다. 저 말은 내가 했다.


[쓰리소사이어티 기원 배치3]

셰리 캐스크라 그런지 입에 머금고 삼키자마자 프루티 함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입 맛을 다시자 타닌감이 또 입안을 가득 채웠다. 풍성한 느낌이 있었다. 향으로 한 번 타닌으로 한 번. 타닌감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나쁘지 않았다. 원샷 때리고 가는 와중 뭔가 입에 오래 여운을 남겨주는 역할을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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