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첫째 주, 마실 구실.
"지난주에 며칠이나 마셨어?"
"월화목금토일. 6일."
"왜 6일이나.. 아니, 왜 수요일엔 안 먹었어?"
"저번주 일주일 내내 마시고, 월요일이랑 화요일까지 마셨더니, 힘들더라.. 월요일은 전 회사 팀장들 모임, 화요일에는 팀회식.. 다 빠질 수 없는 자리였어. 새 팀원 환영회도 한 달 만에 하는 건데.. 가야지. 나머지는 그냥 반주고.."
"토요일은 낮부터 어디 갔다 왔어?"
"토요일은 월요일에 봤던 형님이랑 수원 가서 낮술 했어."
"지금 팀원은 겨우 몇 달에 한 번 회식하는데, 전 회사 동료를 일주일에 두 번이나 봐?"
"그 형님은.. 전 직장 동료가 아니라, 이제 친구라고 봐야지. 그리고 요즘 젊은 친구들은 회식 자주 하는 거 아마도 싫어할걸..?"
<23.10.30~31>
지난주 과음의 영향일까? 일요일 밤 야식으로 먹은 떡볶이가 체한 것일까? 월요일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때, 카톡이 울렸다.
"월욜인데 한 잔 해야지??"
카톡은 이렇게 왔지만, 약속을 잡는 상황은 아니다. 약속을 리마인드 하는 상황이다. 까먹고 잊고 있었다. 지지난주 목요일 술자리를 지난주 월요일로 미뤘다는 것을.
그렇게 전 직장에서 팀장 직책을 맡았던 세 명이 모여 술을 찌끄리기 시작했다. 전에 회사에 있을 때도 종종 이렇게 셋이 먹은 적이 있다. 팀장은 위로도 아래로도 외로운 끼어있는 직책이고, 자신의 고민과 신세에 대해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대체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니까.
그땐 회사의 미래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했다.
조직에 대한 불만과 해결하기 위해 조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요즘 친구들은 뭘 좋아하여, 어떻게 해야 업무 할 때 동기부여가 되는지,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하며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텍스트로 쓰고 보니 지루하고 숨 막히는 이야기들 뿐인데. 그땐 즐겁고, 미친 사람처럼 이야기했었다. 아니, 저 시절 이야기는 지금 해도 즐겁고 미친 듯이 떠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전 직장에서는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이면 각자가 가진 '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상은 변했지만 하는 이야기 똑같다. 여전히 뭘 하고 싶은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음 날은 몇 달만의 팀 회식 겸 신규 입사자 환영회가 있었다. 축하와 격려와 파이팅 하자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일하면서 힘들었던 순간과 보람찼던 순간들을 회고했다.
어제 전 직장 동료들과 나누었던 고민과 걱정은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 눌러 놓고, 장밋빛 미래와 희망을 입 밖으로 뱉었다.
당연히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할 말과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었을 뿐.
<2023. 11. 4>
아무 연고도 없는 용인에 자리를 잡은 지 어느새 5년이 다 되어 간다. 아니, 그나마 실낱같은 연고가 있어서 5년 가까이 살고, 앞으로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 팀으로 6년 가까이 일했고,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못해 술만 처먹으면 2~3시간 언쟁은 기본이며, 내게 인성적으로 가장 많은 인풋을 준 '전 직장 동료'이자 동네 형님'이 용인에 산다.
우리는 대체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회사 근처에서 만나 술을 먹는 사이이며, 몇 달에 한 번은 대낮부터 동네에서 만나 낮술을 한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1시 반부터 술을 때려 넣었다. 장소는 수원 팔달문 근처. 수원 통닭거리다.
중국식 만두 두 접시에 소주 두 명을 때려 넣고, 오래 먹으려면 중간중간 쉬어야 한다며 2차를 꽤 먼 곳으로 갔다.
30분 남짓 걸었을까? 41년 전통이라는 간판이 10년은 되어 보이는 '부대찌개 가게 두꺼비집'에 도착했다. 형님의 단골집이었고, 형님이 졸업한 매산 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가게였다.
'수원 만두' '두꺼비집' '용성통닭' '평장원'까지 토요일은 형님의 단골집을 투어 하는 날이었고, 그와 동시에 형님의 어렸을 때 추억도 함께 투어 하는 날이었다.
형님과 이렇게 친해지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가까이 살아서도 있고, 함께 자주 만나 술을 먹어서도 있겠지만, 결국 그 과정 속에서 서로의 추억을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 동네에 살면 함께 겪은 추억만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 얽힌 추억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이렇게 공유하고, 공감하고, 체감할 수 있는 '추억의 총량'은 더 많아진다.
그래서 이렇게 친해진 것은 아닐까?
전 직장 동료 사이에서 친한 친구 사이가 되는 과정은 꽤 어려워 보이기도 쉬워 보이기도 한다.
직장에서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헤쳐나갔어야 하며, 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순간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함께하지 않은 추억까지 서로 공감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친해지는 것 같은데.. 이 허들이 가장 높다.
남의 추억은 대부분 내 관심사가 아니니까. "옛날에는~", "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말이 대부분 여기에 속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 동료가 사는 집이나 동네에 놀러 가는 것과 직장 동료의 고향에 놀러 가는 것은 의미가 정말 큰 것 같다. 친해져야 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가서 친해질 수도 있는 거니까.
[수원만두]
치킨거리 끄트머리에 있는 가게다. 수원 만두라는 상호가 무색하게 많은 중국 음식을 판다. 호불호 갈리는 두꺼운 만두피의 만두! 나는 '극호'였으며, 씹으면 중국 향신료가 입안에 퍼진다.
2차로 통닭거리에 있는 치킨을 먹을 예정이라면 군만두가 아닌 찐만두를 추천한다!
[두꺼비집]
치즈와 다양한 서양 햄이 들어가 진하고 걸쭉한 송탄식 부대찌개 체인이 유행하는 요즘. 김치 베이스로 시원하게 맛을 낸 보기 드문 의정부식 부대찌개다.
라면 대신 당면, 베이크드빈 당연히 없고, 밥은 김가루 없는 맨밥. 끓이면 끓일수록 햄 맛이 실시간으로 우러나오는데, 먹을 때마다 육향을 찾아 헤매는 평냉이 생각났다.
새로를 안 판다. 두꺼비집이라 그런가.. 진로만..
만원에 이게 맞나 싶고, 새로도 없고, 맛은 분명히 있는데 뭔가 좀 아쉬움이 남는 찰나. 낯익은 배우가 3시쯤 들어와서 밥을 먹더라. 그렇게 이 집은 41년 전통 노포 맛집으로 내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용성통닭]
3차로 와서 절반 이상 먹어치울 정도로 맛있다. 튀김옷이 두껍지 않아 치킨 자체는 담백하고, 양념 맛은 진했다. 그래서일까? 소주 안주로 손색이 없었고 소주를 3병이나 비웠고, 정신도 함께 비웠다.
[평장원]
육수 3번 리필, 기억에 남는 가게이나, 가게에서의 기억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