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둘째 주, 마실 구실.
"지난주에 며칠이나 마셨..."
"월화수목금토일. 7일. 지난주 토요일에 생일이었으니까!"
<23.11.6~12>
언제부터 인가 생일이 그렇게 특별한 날이라는 느낌도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요 몇 년 생일을 돌이켜보면 생일이라고 요란스럽게 뭘 하지 않았더라. 작년에는 조개찜에 소주를 먹었고, 재작년은 기억도 안 나고, 폰에 사진도 없어 뭘 했는지 모른다. 3년 전엔 순댓국에 소주를 먹었더라.
물론,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챙기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내가 생일인 것을 까먹게 놔두지 않는다. 아침 일찍 카톡이 오고, 단톡방에 축하 이모티콘이 도배되고, 내 취향을 고려한 기프티콘이 카톡에 쌓이고, 초에 불이 켜진 케이크가 불쑥불쑥 내 앞에 나타난다.
팀원이 갑자기 “팀장님, 잠깐 이야기 가능하세요?”라고 말하며 나를 회의실로 데려가면 깨닫는다. ‘아, 나 내일 생일이지? 아, 내일 재택 하는 날이지!’ 이런 의미에서 생일 케이크를 받았을 때 “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는 내 리액션은 정말 참트루다.
나이를 먹으며 생일에 무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얼굴이 늙고, 나이를 먹는 것이 싫기 때문일까?
‘세상에 태어나 삶을 부여받은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즐겁고, 축하받을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무의식이 깔려 있어서는 아닐까? (텍스트로 보니 좀.. 그렇네) 삶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도 물론 크지만, 동시에 삶은 무거운 책임이고, 풀기 어려운 숙제로 다가오는 경우도 많이 있으니까.
혹은 ‘결과의 크기보다, 노력과 도전의 크기로, 성취감의 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은 아닐까? 이건 개인차에 따라 다른데 탄생은 위대한 일이지만 나는 탄생에 대하여 기여한 바가 없다. 그래서는 아닐까? 최근에 승진이 결정된 날이나,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를 꺼낸 날이, 생일보다 더 특별한 날로 느껴졌다.
그래도.. 태어난 날인데.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놔두기보다는 특별한 날로 만드는 것이 맞지 않을까?
<2023. 11. 11>
"생일인데 뭐 안 해?"라는 남들의 말에 휘둘린 적은 없다.
그냥, 위에서 말한 것 같이 태어난 것을 별거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했다.
그 자체로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으면,
특별하게 생각되도록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하지 않았던 짓을 했다.
전시를 보고, 생소한 음식을 먹었다. 맛있었지만 취향은 아니었고, 좋은 경험이었다.라는 말과 함께 돌아서기에는 충분했다. 밥은 그저 그랬지만, 전시는.. 정말 좋았다..! 생소한 것을 시도한 나를 칭찬했다.
새로운 시도가 특별한 경험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가 없으면 경험도 없다. 친구의 생일, 승진, 고민, 걱정, 회식, 모임이 술 마실 구실이 되는 것처럼, 어쩌면 생일이라는 것도 하지 않았던 짓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정도 역할이면 잔잔한 삶에 파동을 주기에도 충분한 역할이지 않을까?
[풍년옥]
진짜, 술을 부르는 수육과 설렁탕이 있는 집이다. 고봉밥처럼 담아주는 김치에서 맛집 포스를 느낄 수 있으며, 기대한 그대로의 수육과 동그랑땡과 설렁탕을 맛볼 수 있다.
추운 겨울, 남자들끼리 낮술을 시작하기에 너무 좋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