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세대주의 추천이었다. 자산운용사에서 일하고 있는 세대주는 이틀만에 책을 뚝딱 읽어냈다. 심리 중심으로 움직이는, 제도권 외 영역처럼 느껴지는 부동산 시장에 대해, 금융 리스크 관점에서 시장을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을 빚어주는 교과서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서점의 매대를 오가며 이 책의 표지를 많이 보기는 했었다. 제목이 그렇게 자극적으로 와닿진 않아 굳이 집어볼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얘기하는 건가 싶었지만, 의도하는 바가 전해지지 않아 갸우뚱했고, 왠 곰이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생뚱맞아보여 ‘희한한 책이네’라며 지나쳤더랬다. 유명 금융인플루언서(오건영)들의 추천과 세대주의 강력추천이 아니었다면 집어 들지 않았을 책이다.
대다수 한국사람들이 그렇듯, 나 또한 언젠가 있을 내집마련을 위해 부동산에 항상 한쪽 신경을 곤두세워두고 살아간다. 서점 매대에 쏟아지듯 진열된 부동산 서적들은 한결같이 돈 벌 기회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에서부터 디테일한 부동산 투자 방법론, 앞으로 있을 호재 등.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길러줄 책은 보기 어렵다. 설령 있다한들 ‘나는 부동산으로 학원비를 번다’, ‘부동산으로 준비하는 연금생활’과 같은 도파민 넘치는 제목 가운데 반대 이야기를 하는 책을 서점 매대에서 선별해내기란,, 가능할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가 비즈니스의 성장성을 분석한다면, 신용평가 담당자들은 비즈니스의 안정성을 분석한다고 한다. 크레딧 분석 업무를 해온 저자는, 안정성 관점에서 부동산의 펀더멘털과 부동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기준으로 시장 리스크에 대해 논한다. 금융채널에서 항상 다루어지는 관점들을 부동산에 대입하여 생각할 수 있도록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덕분에 적어도 뉴스기사와 블라인드 부동산 토픽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를 무방비하게 받아들이지는 않게 된 것 같다.
추천의 두번째 이유는 재밌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관점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밈과 명대사들을 빌어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비유로 챕터들을 구성하고 있다. 저자는 크레딧 분석 업무를 하면서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대상(기업)에 대한 신용도/안정성을 설명하는 일을 해왔다. 간결하고 명확한 비즈니스 작법에 익숙한 저자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쉬운 설명을 하기 위해 각 주제마다 재밌는 밈을 끌어오는 형식이다보니, 간간히 공감이 잘 가지 않는 지점들이 발생하긴 하지만 내용도 문장도 단순하기 때문에 ‘아하’하는 추임새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이 책에는 기승전결이 명확한데, 기승전결 프레임워크에 대응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기] CHAPTER 1 - 공급
언론에서 집값의 향방을 논하는 공급의 실체 바로보기.
[승] CHAPTER 2 - 금리
공급 이외에 집값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금리의 이해.
[전] CHAPTER 3 - 유동성
금리의 움직임이 부동산 시장에서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이해.
[결] CHAPTER 4 - 타이밍
앞서 이야기했던 공급/금리/유동성을 기반으로 보았을때, 액션을 취하기 위한 뷰 제시.
언론에서 흔히 집값의 방향을 논할 때 끌고오는 주제인 공급의 실체를 분석한다. 공급이 결정요인이 아니라는 결론을 바탕으로,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이슈인 금리가 부동산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면밀하게 다루며, 부동산의 펀더멘털을 측정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세번째 챕터에서는 금리의 변화가 부동산에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지 전월세를 바탕으로 심화된 개념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부동산에 투자해야만한다고 느끼는 독자들에게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는 흐름이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었던 부동산 책 가운데 가장 실용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을 체감할 수 있는 전개방법을 잘 고른 책이라고 생각한다.
주택가격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실체는 절대적 주택공급량이 아닌, 공급주택의 시가총액이다.
시장은 외곽에 짓는 대규모 공급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금의 흐름이 발생하는 것은 상급지의 선호하는 입지에 대한 공급이다. 기존의 상급 아파트의 대체재가 나타났을때 비로소 자금의 이동이 발생하고, 기존 주택들의 임대 & 매매 가격에 하방 압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요는, 주택가격과 공급량 P x Q의 규모가 주택가격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특히, 주택 분양을 IPO 빗대어 표현한 부분이 와닿았다.
2020년대의 주택공급이라 함은 분양 물량이 아닌 착공 물량이다.
일반적인 한국의 주택공급 과정은 인허가 → 분양 → 착공 → 준공의 순서를 따랐었다. 따라서 분양 물량이 곧 주택 공급의 선행지표였다. 하지만 2020 서울지역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된 이후부터는 자연히 분양의 순서가 착공 뒤로 가게 되었다. 분양가는 [택지비 + 건축비 + 적정이윤]으로 구성되는 상황에서는 시간을 최대한 벌어야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가는 택지 비용으로 분양가를 올려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착공’과 ‘분양’의 순서가 뒤바뀌게 되었다. 착공을 한 이상 사업에 대한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2~3년 이내에 공급이 될 것이라고 보고 ‘착공’을 선행지표로 봐야되는 상황으로 전환되었다.
전세는 채권이다. 채권의 관점에서 펀더멘털을 측정할 수 있다.
고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산을 채권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계약기간동안 정해진 월세를 발생시키는 주택은 채권으로 볼 수 있다. 즉,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속성을 갖고 있다. 한국의 아파트 월세 시세는 주변이 물리적으로 개발되지 않는 한 일정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아파트 A의 월세가 100만원이라 가정하자. 금리가 3%인 상황에서는 4억원의 채권이 되고, 금리가 5%인 상황에서는 금리가 2.4억원의 채권이 되는 것이다. 이 가격은 전세가의 기준, 펀더멘털이 된다.
주택은 채권과 주식과 금의 속성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아파트의 임대수익률을 계산하면 기준금리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돈이면 차라리 예금할텐데!’라는 생각보다 ‘수익률을 손해보더라도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게 이득이야’라는 생각이 우세한, 고평가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아파트에는 채권의 속성 뿐만 아니라 ‘가치저장수단’인 금의 속성이 동시에 포함되는 것이다. 아파트의 가격은 다음과 같다. 아파트 가격 = A + B + C
A : 현재의 사용가치, 전월세(채권)
B : 향후 임대수익 상승 기대(주식)
C : 소유 프리미엄 및 희소성 가치부여(금)
※ 주택 투자에 있어 유의할 점은 유동성이 낮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의 주기가 길며, 다른 전통자산 대비 많은 부채를 동반한다. 겨울을 버티려면 유동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유동성]
전세소멸? 전세와 월세는 금리에 따라 균형을 맞춰간다.
금리가 낮아지는 시기에는 전월세전환율도 후행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을 띈다. 이는 투기적 수요로 인해 월세보다 차입을 압도적으로 늘릴 수 있는 전세를 선호하고, 세입자 입장에서도 낮은 이율로 전세보증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같은 상황에서는 2022 시장금리 급등으로 인해 대출금리가 전환율보다 높아지면서 월세가 전세의 원리금보다 저렴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월세와 전세는 금리에 따라 시소타기를 하는 것이다. 현재 시장에 전세보증금이 높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집주인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세 소멸’이라는 키워드에 힘이 실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유동성 리스크, 똘똘한 한 채의 위험
신용평가사에서는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사업경쟁력, 재무구조와 같은 펀더멘털과 더불어 유동성분석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상환해야 할 채무에 대응할 보유 현금과 현금 창출능력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개인에게 있을 수 있는 유동성 리스크는 크게 다음과 같다. 소득이 감소해 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지는 상황 채권자과 빠른 상환을 요구하는 경우 사업자대출을 위해 담보로 제공한 부동산 시세가 하락해 LTV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1번의 경우 소득 감소 뿐만 아니라 금리인상기에도 압박으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3번의 경우는 가계 2번은 입주장 효과로 인해 전세 시세가 떨어지는 역전세의 경우다. 대출이 아닌 기업대출로 잡히는 부분으로 실질 가계부채의 블랙스완이 되는 요소다. 다주택자 소유세 부담으로 인해 좋은 1채를 보유하는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요즘처럼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 상황에서는 좋은 전략이지만, 반대의 상황에서는 함정이 될 수 있다.
※ 임대차 2법이 시장에 미친 영향
2020년 시행된 임대차 3법 가운데 2개 법은 부동산 시장의 지형을 뒤틀어놓았다. 임차인에게 2년 거주 후 계약을 갱신할 권리가 있는 계약갱신청구권①, 그리고 계약갱신으로 전월세 금액을 최대 5%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한 전월세상한제②가 그 주인공이다. 앞서 ‘월세’는 변동폭이 크게 없는 지표이다. 그런데 임대차2법 시행 이후 월세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당시 시장에는 견조한 규모의 신축 입주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또 코로나19로 인해 혼인은 급감했으니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도 아니었던 것.
결론적으로 임대차2법은 매년 시장에 나오는 임대물량을 반토막 내는 효과를 낳았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엇비슷한 가격에 계속 거주하는 것이 이득일테니 재계약을 행사할 것이고, 제한적 물량만이 임대로 나오게 되는 것이니 공급이 급감함으로써 가격을 밀어올리는 효과를 낳은 것이다.
[타이밍]
마지막으로 저자가 참고할 주요 지표로 건설사의 실적(HDC산업개발) / 수도권 선호 입지 공공분양 미분양 실적 / 최선호지 신축아파트 가격의 추이 / 전문가들의 의견이 쏠릴 때를 눈여겨보며 행동을 위한 준비를 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또한 가장 근본적인 것은 환율이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국가가 아닌 한, 각국 화폐가치를 좌우하는 것은 USD벌이 능력이다. 이것이 취약해지면 2차로 외화보유고가 떨어지고 나아가 국가부도의 상황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IMF 위기가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었으며, 각국이 수출기업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USD확보를 위함이다. 한중일이 오랜 기간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온(2016~) 근본적이유는 원자재를 공급하는 이머징국가들의 환율 붕괴에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외화벌이에 타격이 생긴 것이다.
이는 1400원대 환율이 장기간 유지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을 낳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려면 경기가 좋아지거나 금리가 낮아지거나 가운데 하나라도 만족시켜야 한다. 현재 높은 환율, 무역수지 적자, 고환율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부동산의 선결 과제는 근본적으로 환율 안정으로 보고 있다.
2021년의 급등장을 거치면서 직장인들간에는 부동산의 C에 대한 믿음이 견고해진 것 같다. 내집마련이라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내지는 양극화되는 세상에 나머지 한편에 남을 수 없다는 불안이 형성된 것 같다.
집근처를 돌아다니며 임장을 다니면서 보러 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거래는 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공인중개사 아주머니가 임장 이후에도 두세번 연락이 오는 것을 보면 줄다리기가 아주 팽팽한 모양이다.
전세사기를 겪은 내 입장은 돌다리도 두들겨봐야 한다는 마음이다. 그 누가 주택가 임대시장이 이렇게 초토화될 줄 알았겠는가. 위기는 파도처럼 덮쳐오고,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유동성을 보유한 사람들이었다. 대출의 규모도, 선택하는 집의 펀더멘털과 유동성도 단단한 그런 선택을 해야만 앞으로의 불확실성에도 뿌리뽑히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차곡차곡 시드를 모으며 단단하게 공부해나가야겠다는 마음이 크다. 부동산 우상향의 달콤함만을 외치는 책 보다, 부동산을 하나의 섹터 관점에서 바라보고 모든 시장상황을 예로 들어가며 안정성을 논하는 책이 균형있는 자산관리의 기초가 될 것으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벌써 나의 길잡이가 되었다. 앞으로도 내용을 복기하며 현재상황을 빗대어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