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
기름과 고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체내 단백질 합성의 원료이며, 침샘을 자극하는 기분 좋은 흥분제이자, 좋은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음식이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곱창이나 대창은 내장에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다. 두꺼운 기름기는 소화기에 부담이 가고, 느끼함을 잡기 위해 소주와 맥주를 함께 마시게 되니 간도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등, 먹고 나면 소화를 위한 오장육부의 합주가 일어난다. 값도 꽤 나가는 식사라 지갑이 가벼워질 각오도 어느정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면 마음이 쉽게 동하질 않는 메뉴다.
곱창의 매력은 부담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을 때 극대화 된다. 둘로는 부족하다, 넷은 되어야 나쁜 짓을 공모할 때의 흥분이 만들어진다. 가령 엄마가 먹지 말라는 라면을 몰래 먹었지만 여러 명이서 먹었기 때문에 책임은 1/N이 되는 것 같은. 곱창은 이런 죄책감을 동반하는 음식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뱃속과 지갑의 부담을 함께 질 수 있는, 기꺼이 오늘 내장을 버릴 수 있는 먹성 좋은 친구들과 함께 먹고 싶은 이유다. (곱창이 내키지 않지만 메뉴 선정으로 흥분한 사람들을 실망시키기 두렵더라도 부디 솔직히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가급적 불판 앞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인원으로 곱창집에 가고 싶다. 그리고 만석으로 사람이 바글바글한 곱창집이었으면 좋겠다. 이 '건강하지 않음'을 나누는 사람이 가득한 장소였으면 좋겠다. 만석이라는 것은 저녁을 곱창과 진탕 놀기에 후회 없는, 길티 플레저를 만끽하기 제격인 장소라는걸 반증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왕 기름 파티를 하는거라면 제대로 하고 싶기 때문에, 나는 대창을 먹으러 곱창집에 간다. 시작은 모둠으로 시켜 특양, 곱창, 대창, 막창을 고루 시켜 먹는다. 한판 끝나고 나면 대창을 따로 시켜 대창의 부적절한 존재감을 입안에 가득 알린다. 이 이상 기름을 먹기엔 부담이 따를 때쯤 곱창을 시켜 질겅질겅 씹으며 소맥과 함께 자리를 마무리해 나간다.
대창을 중심으로 두 가지 양념 타입의 맛집을 소개하겠다. 하나는 기업형 맛집 '오발탄'이다. 특유의 매콤한, 빨간 고춧가루 양념이 젓가락질을 멈추게 하질 않는 것 같다. 숯불구이의 불향도 기름진 맛을 느끼하지 않게 잡아준다. 가격이 사악하다는 게 단점이다. 이 '오발탄식' 숯불 곱창을 최근 마포 공덕의 '일류곱창'이라는 곳에서 맛봤다. 주문단위가 오발탄보다 작아 부담이 덜하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아담한 가게에서 오는 만족감도 크다.
또 다른 대창 맛집은 대전 서구 월평동의 '다래곱창'이다. 이 집의 양념은 오발탄식 매콤한 양념과 달리, 고소한 소고기 육수맛(?) 감칠맛의 양념을 바른 대창으로, 대전 곱창의 지존이다. 비록 숯불구이가 아닌 철판구이(그리들+브루스타)지만, 양념의 밸런스가 온전하여 숯향이 가미될 필요가 없는 퀄리티다. 고춧가루와 숯향, 불향이 없는데도 끊임없이 집어먹게 되는 마성의 양념이다. 유튜브 먹방 ASMR로도 자주 등장하는 통대창이 먼저 구워진 형태로 제공되어, 보는 곳에서 직접 대창을 잘라주신다. 그리들에 고이는 기름을 흡수하기 위해 직접 식빵을 사용하는 것도 클래식한 맛이 있어 좋다.
글을 작성하기 불과 3일 전 곱창을 먹고 이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인데, 글을 쓰면서 곱창이 또 먹고 싶어졌다. 내 뱃속엔 거지가 살고 있는 듯하다. 다음 곱창을 먹으러 가기까지 현생을 충실히 살면서, 건강한 것도 많이 먹으면서 곱창과 대창을 먹을 기운을 충전해 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