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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 Greene Sep 21. 2022

인형을 통해 품은 욕망

에세이






호텔이 유독 좋다. 예쁘게 꾸며진 넓은 리조트도. 그 테마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 다른 세상에 사는 반 쯤은 다른 나를 마주한다. 예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건축, 인테리어. 발 디디는 곳 마다 더럽혀 진 적 없는 것 처럼 깔끔히 청소 되어 있고, 흘러 나오는지도 몰랐던 나직한 음악 소리는 마치 내 머릿 속에서 재생되는 마음의 노래처럼 자연스럽다.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은 여유가 넘치고 사랑으로 가득 차 나를 공격할리 없는 안전함도 느껴진다. 이 모든 좋은 것을 더해 낸 하나의 느낌. 그런 곳에 들어서면 한 군데 한 군데 모든 공간의 공기가 모두 이 '하나의 느낌'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하다. 그 곳에서의 나는 비교적 참 얌전하고 친절하고 안정되어 있다.



엊그제, 산책을 나섰다. 날이 맑아 끈적임 없이 걷다가 태양이 햇빛을 비춰 내게 보라고 눈길 준 곳에 가 시선을 멈췄다. 찰나의 느낌이 나를 스쳤다. 늘 그렇듯 느낌 후에 인지는 뒤 늦게 한다. 그 느낌, 호텔에서 느끼던 그 '느낌'이다. 내 시선이 머무른 곳은 새로 짓고 있는 완공을 거의 앞둔 아파트 단지, 그 곳에 예쁘게 지어진 입구 건축물이었다. 이미 찰나에 스치고 자취를 감춘 그 느낌에 미련이 남아, 나는 멈춰 서 아파트 단지를 빼꼼 구경했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아파트 단지였지만, 조금이나마 더 새 것이라 최신의 것에서 나는 세련됨이 있었다. 특히 입구 디자인이 그랬다. 왜 인지 그 입구를 통과해 들어갈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 평화가 나에게만은 특권처럼 쏟아질 것 같은 환영하는 모양의 건축물. 나는 그 평화의 정체가 궁금해져 몸을 서 있던 곳에 그대로 멈춰 세워 둔 채 웅장한 입구를 통과해 신식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의 저택 안에 들어 있다. 플라스틱으로 지어진 인형의 저택. 베개정도 만한 넓이. 작은 플라스틱 인형은 바닥에 발이 붙은 채 내가 조종하는 스틱에 의해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인다. 대문을 열고 들어 와 펼쳐지는 2층 짜리 대 저택. 대 저택이 분명하지만, 방은 두 어 개 정도. 부엌이 있고, 1층엔 커다란 홀이. 신데렐라 동화 속 주인공이 구두 한 쪽을 버려두고 떠났던 계단처럼 넓고 웅장한 계단을 오를 생각에 나는 1층은 구경할 새가 없다. 왼 쪽 계단을 오르면 있던 내가 가장 좋아하던 방. 그 방엔 예쁜 드레스가 가득 할 옷 장이 벽면을 채우고, 공주가 눕는 하얀 시트의 침대도 있다. 그저 스틱을 움직여 인형이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는 것 밖에 할 것 없는 장난감이었지만, 그 때 그 인형들이 그 작은 공간에서 정해진 길만을 따라 한정 있이 이리 갔다 다시 돌아왔다 해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상상들을 했었는지. 그 순간 진짜 그 인형이 되어 디즈니 공주가 되어보기도 하고 과거 속에 실제 있었을 귀족 아씨가 되어보기도 하고 평범한 우리집의 막내 딸이 그 대저택을 가져보기도 하고. 이 방은 내 방 저 방은 동생 방, 있지도 않은 여자 형제들을 만들어 방을 나눠 내 방엔 더 크게 정을 줘 보기도 하고. 내일이면 누가 이 집에 놀러와 뭐를 하고 같이 놀까 계획을 짜기도 했다.



지금은 미처  기억해   없는  상상들. 그때의 마음들. 그럼에도 그때  곳에 있었다고  확신   있는  나를 다시 그때의  인형의 집으로 데려다   '느낌.'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없는 기분 좋은 느낌, 하지만 그때는 기분 좋을 것도 없이 당연했던 내가 누리고 있을 미래의 느낌. 아름답고, 고급스럽고, 평화만이 가득할  같은 그런 장소에 가면 아주 짧게 회상되어 올라오는 그때의 느낌. 호텔에서. 신식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서. 그저 콘크리트일 뿐이고 그저  잡아먹는 사치일 뿐이고  말고도   혹은    명이  하루 누리고 가는 환상일 뿐이고 일하기 싫은 영혼들이 지루히 앉아 창조해  고액 연봉의 결과물일 뿐임을 알면서도 나는  매력적인 느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느낌을 반짝 느끼고, 애처롭게 붙잡으려 하면서도 나는 그것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뇌에서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나는 따로  있지 않은 출구를 통해  신식 아파트 단지 안을 빠져 나온다.



소유욕. 물질주의. 허세. 공주 놀이. 현실감각을 잃은 몽상. 이 모든 것들을 자아내는 결핍. 사람들의 눈에 비친 아이의 순수함은 이런 나의 본성을 포장해 줄 수 있을까? 아니면 꾸며진 호텔의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에 자발적으로 속는 허세 가득한 여자가 그 어린 아이의 순수함마저 더럽혀 버리려나. 나는 그런 종류의 모든 것들을 어린 기억에만 존재하는 인형의 저택 속 웅장한 계단 위에 벗어 두고 왔어야 했을까? 대저택은 평화로웠다. 아이는 늘 사랑받고 있었다. 그것이 부모로부터 였는지 한 남자로부터였는지 그건 몰라도, 부족할 것 하나 없이 사랑받는 모자름 없는 여자였다. 나는 자꾸 존재하지 않아 상상 속에 만들어 낸 미래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 본성이 자꾸만 세상의 미움을 받아 빼꼼 고개만 내밀곤 이내 숨어버리긴 하지만. ‘나도 갖고 싶어.’ ‘내가 주인공이야.’ ‘더 많이 사랑받고 싶어.’ 소곤대는 작은 소리를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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