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여러 마법의 마을 중 베스트를 꼽으라면 탁스코 (Taxco)를 빼놓을 수 없다. 멕시코 서부 게레로 (Guerrero) 주에 속한 탁스코는 1529년에 세워진 상당히 오래된 도시다. 그 유명한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스텍 제국을 정복한 게 1521년이니, 멕시코의 식민지 역사를 같이 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탁스코는 세월만큼이나 깊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사진을 봐도 언덕 곳곳엔 식민지 풍 건물이 밀집해 있고, 중간에는 산타 프리스카 성당 (Santa Prisca de Taxco)이 우뚝 서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하나의 좁은 거리를 구경하고 계단을 올라 또 다른 풍경을 가진 거리를 보는 재미가 있는, 한마디로 천천히 걸으며 구석구석 구경하기 좋은 도시다.
산 비탈길이 많은 지형상, 탁스코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다. 먼저 도시의 전체 전경을 보고 싶다면 예수 석상이 있는 전망대가 가장 유명하다. 택시로 10분, 걸어서 30분 정도 걸려 도착할 수 있는 탁스코의 랜드마크로, 하늘에서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예수 석상이 도시를 축복하고 보호해 주는 느낌을 준다. 탁스코의 전경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전망대에 오르는 방법이다. 산에 도착해서 볼 수 있는 전망도 있지만 통유리로 된 케이블카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재미도 있다. 마지막 전망대는 특정 장소가 아닌, 마을 중간중간 탁 트여있는 랜덤한 곳들이다. 사실 중앙 광장에서 언덕길을 조금만 올라도 고즈넉한 탁스코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또 해 질 무렵 탁트인 테라스가 있는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면 아름다운 전망과 함께 건물들 위로 노을 져가는 하늘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탁스코는 과거 스페인 제국이 누린 '부의 역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이곳 주변에 많은 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은을 캐내기 위해 이곳에 사람들을 정착시켰다. 이후 탁스코는 멕시코의 주요 광산지인 사카테카스, 과나후아토와 함께 주요 경제 핵심지로 자리 잡았고, 수도 멕시코시티 다음으로 중요한 정치적 행정 도시가 됐다. 이곳에서 생산된 은은 서부로는 가까운 아카풀코 항구로 향했고, 동쪽으론 멕시코시티를 지나 베라크루스 항구로 향했다. 은을 가득 채운 ‘스페인 보물 함대’ (은을 운송하는 데 사용된 스페인의 해상 군단)는 각각 태평양 루트를 따라 아시아 식민지였던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했고, 다른 한쪽에선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에 도달했다. 이 중 스페인 세비야 항구로 들어온 은들은 스페인 각지로 퍼져 엄청난 부를 향상하는데 기여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스페인은 탁스코의 은을 통해 경제적 부 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학의 황금기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꿨을 때, 탁스코는 원주민 입장에선 착취의 도시나 다름없었다. 당시 멕시코로 건너온 스페인 사람들 수로는 은을 생산해 내긴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은을 캐내는 고된 일은 근처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 자연스레 맡게 됐다. 참고로 남미 대륙에선 볼리비아의 포토시가 은의 도시인 것으로 유명하다. 우루과이의 유명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해발 4천 미터나 되는 광산에서 희생된 잉카 원주민들을 언급했다. 탁스코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탁스코의 은이 스페인을 먹여 살렸지만, 어떤 측면에는 원주민들이 스페인을 먹여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어찌 됐든 은 덕분에 탁스코는 독립 이후에도 가장 중요한 도시로 남게 됐다. 또 은이 생산되면서, 은을 가공하는 기술도 상당히 발전했다. 탁스코에 가면 은으로 만든 귀걸이, 반지, 목걸이를 파는 보석점 (Joyeria), 은 상점 (Plateria)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엔 상당한 실력을 가진 장인들도 많은데, 중앙 광장 옆에 있는 시장에는 집중해서 은을 가공하는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본인이 원하는 문구나 스타일이 있다면 직접 의뢰해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각각의 상점에선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은을 가공한 뒤 특별한 디자인으로 탄생시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으며, 아스테카란 이름의 상점은 영국 출신 은공장 윌리엄 스프래틀링 (William Spratling)이 프리다 칼로에게 선물했다는 목걸이, 귀걸이, 팔찌의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탁스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딱정벌레 차'가 많다는 점이다. 폭스바겐에서 제작한 이 차는 스페인어로 '엘 보초' (El Vocho, 딱정벌레)라 부르는데, 한눈에 봐도 다른 도시보다 딱정벌레 차가 많은 걸 알 수 있다. 때문에 멕시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탁스코를 '딱정벌레랜드' (Vocholandia)라 부르기도 한다. 탁스코에서 이 차는 하얀색 택시로 사용되어 4-5미터 간격의 좁은 비탈길을 누빈다. 멕시코에서 이 차는 2003년을 마지막으로 제작이 중단되어 부품을 구하기 힘들지만, 탁스코의 택시 기사들은 여전히 이 딱정벌레차를 고집하고 있다. 작고 귀여운 디자인을 가진 '엘 보초'는 탁스코의 풍경에서 아름답게 녹아들어, 이제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명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