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일이라면
표현이 어려운 사람
아버지와 나는 평상시 연락을 잘 하는 사이가 아니다. 언젠가 통화라도 한 번 오는 날엔 오히려 반가움보단 무슨 일이 벌어져서라고 생각해 불안한 감정이 더 크게 든다. 작게는 속도위반 딱지가 집으로 날아가 아버지가 확인했거나, 크게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기억. 며칠 전엔 그 불안감을 겪은 일이 있었는데 휴대폰 너머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평상시와 다르게 해맑으셨고 기분이 한층 좋아계셨다. 그때 역시 나를 반갑게 불렀다. "성경아" 아버지는 독립출판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나는 그 당시 감정에 충실했던 글들을 모아 작은 시집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던 나에겐 너무 숨기고 싶은 과거이기도 했지만 아버지를 포함해 우리 가족은 케이크까지 준비해 가며 시집이 나온 걸 마치 등단작가가 된 것 처럼 축하해 줬다.
그 후로도 작은 공모전에도 참가해 가며 글쓰기를 이어 나갔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삶은 글과 거리가 멀었다. 어머니는 어릴 적 내가 학교를 다녀오면 '좋은 생각' 간행물을 구독해 꾸준히 간행물 속의 사연들을 읽곤 했다. 아마 내가 글을 조금이나마 기록하고 읽는 습관이 생긴 건 아버지보단 어머니의 영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통화 속 아버지는 다짜고짜 아버지 친구분들에게 돈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당황해하며 무슨 돈이냐고 묻자 아들이 글을 쓴다고 시집도 냈다고 공모전에 나가 당선이 돼 전시도 했다며 내 숨기고 싶은 이력을 자랑한 것이다. 가족들이 초를 켜고 축하해 줬던 기억도 나에게는 고마움과 동시에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속마음은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이렇게까지 해줄 일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친구분들께 자랑했던 행동은 고스란히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으로 크게 다가왔고 나는 만들어둔 책이 이제 더 이상 없다고 둘러댔다. 아버지는 몇 번이고 구해 와야 한다. 이미 돈 다 받았다. 잘 찾아봐라. 말했지만 나는 안된다고 다시 아저씨들에게 돈을 돌려주라 말하며 갑자기 느낀 불안감의 외줄 타기는 끝이 났고 순간 통화를 마치고 기억하기 싫었던 과거든 좋었던 과거든 얽매어 쿨하지 못한 내가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감정에 누구보다도 충실했던 일이었고 여전히 별거 아닌 일에도 축하해 주고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에 감사했던 하루였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