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또는 강아지 부르는 사람 마음
부모님은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강아지와 고양이을 좋아하지 않다기보단 날리는 털을 싫어하신다. 그럼에도 우리집은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이름은 홍사월, 홍보리, 홍똥이, 사월이의 우주는 포천 시장에서 시작됐다. 2개월도 안돼 보이는 갓난 아기 두 마리가 커다란 철장 안에 꾸물대는 것을 엄마가 오천원짜리 종이 한 장을 주고 커다란 사과 박스에 담아왔다. 시장과 집은 버스를 타고 내려서 적어도 20분에서 30분은 족히 걸어와야 했다. 그날 엄마는 가족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의 생각으로만 오천원과 맞바꾼 작은 생명을 들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사월이는 하루종일 사과 상자 안에서 낑낑 대기만 했다. 지금 내 품에 잠들어 있는 사월이는 그때 그 기억이 날까. 사람과 같은 언어를 쓰지 않을 뿐 가족의 모든 걸 공유하고 있는 사월이, 그때 함께 차가운 철장 속에 있던 아기 형제는 어디로 갔을까. 사월이를 볼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진다. 영문도 모른 채 자기 운명을 오천원짜리 지폐 한 장에 평생을 흙바닥에 묶여 살지. 개 장수에게 도살장으로 끌려갈지. 매일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주인과 함께 침대 위에서 자게 될지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소와 송아지는 구분해 부르지만 강아지를 개라고 통칭해 부르던 아버지는 엄마보다 더 말 못 하는 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아마 그건 어릴 적 개라고 불리던 난폭한 동물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탓이 큰 것 이겠지.
아버지가 벽을 뚫어 구멍을 만들어 주셨다.(뒷마당에 가서 대소변 보라고)
아버지가 사월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아버지가 사월이에게 ‘사월아’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산책 도중 큰 개가 사월이를 물려고 하는 걸 들어 안아 보호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사월이랑 그 길로 가지 말라고
그날은 사월이도 아버지에게 적어도 아버지 기억속에 개는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