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모 코스모스
아침 8시 31분, 사월이와 아침 산책을 위해(사월이는 함께 사는 반려견)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는 코스, 길 옆 화단에 검은색 덩어리가 보였다. 사월이의 생리현상만 빨리 해결해주기 위함이었기에 잠도 제대로 깨지 않은 상태로 안경도 쓰지 않은 채 단지를 걸었다. 처음엔 대형견의 대변인 줄만 알고 누가 대변을 치우지도 않고 저러고 갔나 싶어 인상 찌푸리고 지나가는데 검은 덩어리 위에는 파리가 심하게 꼬여 있었다.
청설모였다.
크기가 꽤나 큰 성체였다. 이 청설모가 도시 속 아파트 단지 화단에 왜 있는 걸까 잠시 생각했다. 아파트 단지 뒤편에는 작은 동산이 있다. 혹시 거기서 온 걸까. 청설모는 남이섬에서 가장 많이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도 아파트 단지에서 뿌리가 반쯤 나온 나무에 걸 터진 사체를 보다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쩌다 저곳에서 죽음을 맡이 했을까. 누군가 해코지로 사냥을 한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청설모 사체가 있을 법한 곳이 아니었다. 멋진 공원에 있어야 할 청설모가 왜 여기에 이렇게 쓰러져 있을까. 내가 보게 된 것도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청설모를 보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내가 겪은 아침의 상황을 누군가에게 퍼트릴 생각을 했다. 다행히 휴대폰은 잠옷 주머니에 없었고 그 놀란 마음은 누군가와의 이야기거리로 사용되지 않았다. 찜찜한 사건으로 시작한 하루, 작은 우주 하나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