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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Dec 13. 2019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한국소설

- 어제 커피 사주셨으니까 오늘 커피는 제가 살게요, 대리님!


점심 값 9,000원은 각자냈고 어제 얻어먹은 커피를 갚기 위해 대리님 커피와 내 커피 값으로 11,000원을 냈다.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어제 대리님이 무언갈 샀고 그걸 오늘 내가 똑같이 갚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커피가 나오는 동안 변변찮은 대화를 이어나가다 팀장님 이야기가 나왔다. 맡고 있는 직책에 비해 시원하게 끝나는 법이 없는 업무들, 그 과정에서 느꼈던 대리님과 내 생각들이 맞물리다보니 커피를 기다린 시간이 아주 ㅡ참 우습게도ㅡ 짧게 느껴졌다.


회사로 돌아가는 동안 일과 나의 관계도 대리님과 보낸 시간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주면 돈을 받고 일로 갚는 관계. 그런데 거기서 묘한 소속감과 안정감이 또 나를 서있게 했다. 나는 그 관계의 중간을 찾고 싶은데 그 중간을 찾기가 참 어렵다.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 장류진 한국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잘살겠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을 보는 듯 했다. 단편이 끝날 때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생겨나 손끝이 근질거렸고 마지막 단편에 다다를 때는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인아영 문학평론가가 해설에 “여기에는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215쪽)라는 문장을 썼다.


나는 《일의 기쁨과 슬픔》에 '비대한 자아'가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 그동안 읽은 소설들은 잘 읽혔지만 너무 무거웠다. 답이 없는 내 삶의 타인의 삶을 하나 더 얹은 기분이었다면 《일의 기쁨과 슬픔》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살아나가고 있는 애환을 유쾌하게 그려 놓은 것 같아 가벼웠다. 지나가는 에피소드처럼 읽기 좋았다.


책만큼 <작가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소설을 썼고,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소설이나 문예지를 사고 글을 쓰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 나 역시 더럽고 치사해도 일은 내게 돈을 갖다주고 그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게 한다. 그뿐이랴, 먹고 싶은 것을 먹게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한다.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 크지 않지만 도울 수 있게 만들었고 친구에게 술 한잔 살 수 있는 작은 기쁨도 경험하게 했다.


그렇게 일이 주는 것들은 당연하게 받아들면서 늘 왜 잃는 것만을 생각했을까. 분명 내가 갖고 있는 또 다른 문제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것에 대해 나도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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