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종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IGE May 08. 2020

정유정 [종의 기원]

한국소설


내 소설을 거의 다 써갈 무렵 《종의 기원》을 읽었ㅡ글은 써야하고 어줍짢은 태도로 갈팡질팡 하는 내 모습을 보며, H가 책 한 권을 권했ㅡ다. 내가 쓴 소설을 합평하면서 합평하시는 분들이 주인공(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을 사이코패스라고 지칭했다. 나는 주인공을 사이코패스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의 행동을 사이코패스적 성향으로 몰았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반사회적 성향을 정신적 질환으로 치부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그의 입을 뭐라도 넣어 틀어 막고 싶단 생각, 옆 건물에서 사람이 뛰어내려 죽었는데도 이어폰을 꽂고 일을 하고 있는 회사원, 역 근처에서 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을 휴대폰으로 찍고 있는 사람,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 이익을 위해 생명을 수단으로 활용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한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커뮤니티나 인터넷 뉴스기사로 올라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필터 없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 과연 우리 모두가 정상적인 범주 안에 살고 있을까? 나는 사회라는 집단 생활을 하면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행동, 공감 능력과 죄책감 결여, 낮은 행동 통제력,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 기만 등과 같은 사이코패시(psychopathy) 성향이 높은 사람)라고 분류하는 그 성향을 보게 된다.


유진이 가진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발현 된 것이 온전히 유진의 문제일까?

아니, 온전히 유진의 문제여야 쉬워지는 문제이긴 하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하는 법과 더불어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먹는 법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굶는 법을 동시에 터득하는 것이다. 오로지 인간만 굶는 법을 배우지 못한 생물이었다. 오만 가지 것을 먹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먹으며, 매일 매 순간 먹는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먹을 것을 향한 저 광기는 포식포르노와 딱히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이 지상의 생명체 중 자기 욕망에 대해 가장 참을성이 없는 종이었다.

정유정 한국소설, 종의 기원, e-book 399


《종의 기원》은 유진(주인공)의 입장으로 글이 쓰여진 소설이라 나는 유진과 더 가깝게 상황을 읽었다.

때때로 유진과 거리감을 두려 애썼다. 그러나 소설에 쓰여진 '나'는 결국 '유진'이었기 때문에 거리감을 좁히기가 좀처럼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현장을 따라가기 보다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의 유진이가 사이코패스적 성향ㅡ이봐,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없고 사이코패스만 있는데도 여전히 나는 성향이라 판단하며 글을 쓰고 있다ㅡ을 갖게 된 근원을 찾기 바빴다.


유진의 입장으로 몰입되어 모두를 탓하고 유진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판단 할 수 없었다. 나랑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유진이었고 어쩌면 그 유진이 언제나 내가 될 수도 있었으므로 본능적으로 유진에게 몰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조커」 가 그러했듯이.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줄 수 있으려면. 내 안의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려면.

정유정 한국소설, 종의 기원, 에필로그, e-book 556


일반적인(사회적) 생활을 하는 작가가 유진이 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거다.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진에 대해 공들였는지 이 책의 깊이로 알 수 있었다. 소설이 에세이와 다르게 더 높이 평가 받는 이유는 글을 읽고 나서 할 수 있는 사유에 있다고 했다. 유진이 단순히 사이코패스 라는 성향으로만 짚어진다면 이 책은 그저 한낱 사이코패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유진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의 발화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끝도 없는 주제가 될 것이다. 어렵다.


소설을 배우면서 소설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정유정 작가는 양몰이(원하는 방향으로 독자를 끌고가는)를 잘하는 작가기 때문에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차에 실려가듯 흐르듯 따라가게 된다. 그러다가 종점이라고 탁 하고 서버리면 나도 탁 하고 멈춰버린다. 그녀의 책은 늘 이렇게 숨막히고 고되다. 너무 재미있어 미친듯이 읽다보면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이 항상 무거워 잘 읽지 않게 된다.


이렇게 또 나는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이리도 단숨에 유진이 되어 읽어냈다. 늘 어려운 숙제만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세랑 [목소리를 드릴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