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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Nov 05. 2021

나만 놓으면 되는 관계


나만 놓으면 되는 관계가 무서웠다. 당신 또한 미련 없이 놓고 가면 되지 않느냐는 시원한 답변을 주고 싶겠지만, 그때의 나는 감정이 불안정하고 자존감이 현저히 낮은 상황이었기에 나에 관한 모든 관계가 그렇게 보였다.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손을 놓으면 그만인 게 아닐까. 그럼 내 주변엔 당연히 아무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사실 실제로 그러기도 했었다.

괜찮은 관계라면 눈치를 주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관계에서 눈치를 보았고 그 대부분의 관계와는 현재 연락을 하지 않는 상태이다. 그때는 이렇게 되는 것이 무서웠었다. 나만 갈구하는 관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받는 것만 같아 초라하고 무서웠고 감히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차갑고 두려웠었다. 나만 놓아버리면 이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 눈에 훤했기에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집착이니 질투니 하는 질척한 감정들을 뿌려 악착같이 관계를 잡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관계라는 것에 이토록이나 집착했던 건 안정을 주는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늘 나를 꽤 소중하다 여겨주는 이들이 없었기에. 최근에는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나를 소중히 생각해 주고 내가 꽤 괜찮은 비중을 차지하는 그런 관계. 언젠가 글로 언급하겠지만. 나는 관계에 대한 진입장벽이 심하게 높아(이건 많은 관계들을 거쳐 생긴 일종의 마음 보호 장치 같은 것이다.) 안정을 주는 관계까지 오기 쉽지가 않다. 그렇게 되기까지도 몇 달 혹은 몇 년의 시간을 거치는데, 이 안정적인 관계에 안착되어 있는 사람들이 이젠 꽤나 존재한다는 말이다. 덕분에 나만 놓으면 되는 관계에 좀 더 칼같이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상처를 입는다거나 마음이 자글거리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현재의 나를 지탱해 주는 괜찮은 사람들이 있으니 이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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