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인도 영화
귀여운 딸아이가 있지만, 무심한 남편으로 인해 힘든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엄마 일라.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해보기 위해 자신이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시킨다. 하지만 그 도시락은 아내와 사별한채 단조로운 일상을 사는, 정년을 앞둔 회사원 사잔에게 배달된다. 평소 먹던 도시락과 맛도, 질도 다른 일라의 도시락은 무미건조한 사잔의 일상에 작은 변화를 만든다. 결국 도시락이 잘못 배달되고, 잘못 배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둘은 도시락과 함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일상,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일라와 사잔은 소통으로부터 단절된 사람들이다. 집과 회사만 오가며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잔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젊은 엄마 일라는 딸, 남편과 함께 살지만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 일라는 남편과 대화를 하려 하지만 동문서답만 할 뿐이다. 심지어 딸도 계속해서 혼자만 노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녀가 하는 유일한 소통은 열린 창을 통해 들리는 윗층 아주머니의 목소리 뿐이다. 자의로 혹은 타의로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된 이 둘을 연결한 것이 똑같이 소통이 단절된채 살고 있는 윗층 아주머니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일라와 사잔의 감정은 도시락 안의 편지를 통해 차곡차곡 쌓여간다. 사잔은 일라의 편지로 인해 후임자인 셰이크에게 마음을 열었고, 결과가 좋지는 않았으나 일라는 가족에 대한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자신의 아픔, 그리고 지나온 인생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일라와 사잔의 편지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주인공들의 성장이 돋보였던 영화인만큼 일라와 사잔의 변화가 시작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라의 감사편지에 시니컬한 답장을 보내던 사잔이, 출근을 하다가 어느 모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그 모녀가 일라와 그녀의 딸일까 하여 안절부절하던 장면, 그리고 일라가 사잔의 편지를 읽고 혼자 놀고있던, 딸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사잔은 처음으로 집, 회사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자신이 아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걱정하게 된다. 그리고 일라는 처음으로 딸의 공간으로 들어가 대화를 한다. 이렇게 두 주인공들은 서로의 편지로 자신만의 공간, 관계를 더 확장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이들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변화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이제 노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꺠닫고 일라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사잔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사잔이 일라에게 품었던 감정으로 새로운 시작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이 더 안타까웠다. 물론 사잔의 변화는 현재진행이지만 말이다.
점점 사회에서 잊혀지고 고립되어가던 사잔과 일라는 첫번째 엇갈림 이후 각자의 선택을 한다. 이 둘의 만남이 성사될지는 알 수 없으나, 사회에서 잊혀져가던 사잔은 최소 셰이크, 동네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게 될 것이고, 그리고 일라는 자신을 구속하던 남편과의 관계, 집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주체가 된 삶을 살 것이다. 잘못 탄 기차, 아니 잘못 보내진 도시락이 안내한 이 둘의 목적지는 어디일지, 이들이 보낸 위로의 편지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모르지만, 이들의 목적지가 해피엔딩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