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oey J Jun 09. 2021

풍자 그 자체, <비틀쥬스> Creepy Old Guy

뮤지컬 <비틀쥬스(Beetlejuice)>는 2018년에 시범 공연 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로, 팀 버튼 감독의 1988년 작품 ‘비틀쥬스’를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무비컬이다. 팀 버튼 감독 영화 특유의 기괴하고 시니컬한 분위기를 발랄함과 코믹함으로 잘 살린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출처 : Wikipedia)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평범하디 평범한 신혼부부인 아담과 바바라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유령이 되었지만,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자신들의 집에서 살고 있다. 이 집에 어머니를 여읜 리디아와 아버지 찰스, 그리고 새어머니 딜리아가 이사를 오게 된다. 리디아는 정을 붙이기 힘든 새어머니 딜리아와 자신만 생각하는 듯한 아버지 찰스로 인해 우울해하다가 지박령이 된 아담과 바바라를 만나게 되고 거의 유사 가족의 관계를 맺게 된다. 리디아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아담과 바바라의 계획에 함께하게 되고, 마음대로 계획이 성사되지 않으면서 제멋대로인 사악한 악령 비틀쥬스를 만나게 된다. 비틀쥬스의 등장과 계략으로 일들은 점점 꼬여만 간다.


뮤지컬 비틀쥬스는 영화의 내용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10대 고스족 리디아는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에 빠진 10대 소녀로 바꾸고, 캐릭터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유령들로 인한 소동극과 함께 리디아가 슬픔을 극복하고 아버지와의 심리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이야기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출처 : NYCgo.com)


풍자, 반어법 한 가득인 노래


'비틀쥬스'의 넘버들 중 Creepy Old Guy는 뮤지컬의 클라이막스에 나오는 노래답게 정말 흥겨운 노래다. 이 극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알렉스 브라이트만, 소피아 앤 카루소의 뛰어난 가창력과 이를 받쳐주는 다른 배우들의 목소리는 따로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들리는 신명나는 트럼펫과 드럼 소리는 관객들이 신나게 멜로디에 몸을 맡기게 한다. 


가사를 잠깐 살펴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I love my creepy old guy.’, ‘I am marrying my underage bride.’, ‘Have you guys seen Lolita? It’s just like that, but fine’ 보다시피 입 밖으로 꺼내기 이상한, 공분을 살만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 곡의 백미는 바로 이 가사들이고,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이 곡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스포일러를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오래 전에 개봉한 영화의 줄거리 자체가 스포일러지만 말이다. 수백 년 묵은 악령 비틀쥬스는 10대 소녀 리디아와 결혼하여 부활하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그 계략으로 인해 리디아의 또 다른 가족이 되어준 아담과 바바라가 악령이 될 위기에 처한다. 이에 비틀쥬스는 이들을 원래대로 돌려주는 대신 자신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제안 아닌 제안을 하게 되고, 리디아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비틀쥬스와 결혼을 결심한다. 결국 아담과 바바라를 구했지만, 비틀쥬스의 계획을 알게 된 리디아와 그 가족들은 비틀쥬스의 계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비틀쥬스를 다시 저승세계, 지옥으로 보내기 위한 반격을 준비한다. 그 반격을 위해 리디아와 가족들은 가짜 결혼식을 시작한다. 리디아와 결혼식을 올리면서 비틀쥬스가 다시 살아나면 바로 반격해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곡이 바로 Creepy Old Guy다.


제목의 '징그럽고 늙은 남자'는 수백 년 묵은 악령인 비틀쥬스. 그리고 그의 계략에 빠진 가족들은 다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결혼을 축하하는, 그리고 기뻐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뿐인 딸과 몇 살인지도 모르는 악령과 결혼을 시켜야 하는 현재 상황을 돌려까는 가사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 결혼한다며 흥겹게 춤추며 노래하지만, 그 사이에서 조금씩 툭 튀어나오는 가족들과 리디아의 빡침, 나이 어린 신부를 만나 행복해하는 비틀쥬스의 감정이 모두 들어가 있다. 서로의 동상이몽들이 담긴 곡이다.


이런 컨텍스트를 인지하지 않고 그냥 노래로만 접한다면, “저는 나의 징그럽고 늙은 아저씨와 결혼해요”라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리디아와 이를 열심히 거들고 있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이해 가지 않고, ‘나이 어린 신부(underage bride)와 결혼하는 것’에 설레하는 비틀쥬스의 목소리에 경악하게 된다.


하지만 비틀쥬스에 대한 반격을 노리며 비틀쥬스를 안심시키려는 리디아와 가족들, 그리고 점점 이에 넘어가고 있는 비틀쥬스의 모습을 상상하며 듣는다면 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풍자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징그럽고 늙은 아저씨, 비틀쥬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부르는 가족들의 미사여구에는 돌려까기가 한 가득이다.


‘Gum disease. Skin like grilled cheese. Saggy old asses! It’s cute and vile to each girl that passes’ 식장에 입장하는 비틀쥬스를 소개하는 말이다. 이는 다 썩어있고, 피부는 구운  치즈같고, 엉덩이는 축 처졌는데, 귀엽고 끔찍하단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반어적인 표현이 가득하다. 웃고 춤추며 노래하는 배우들의 입에서 나오는 반어적인 가사들과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관객들이 폭소하지 않을 수가 없다.

‘Girls may seem disgusted, but we’re actually just shy! (여자애들이 역겨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끄러워서 그래!)’ 

‘Have you guys seen “Lolita”? This is just like that, but fine! (영화 롤리타를 본 적 있나요? 이게 딱 그래! 하지만 괜찮아요)’

‘I know that on the outside he’s disgusting. And even on the inside, he’s disgusting.(그의 외면이 역겨운 건 나도 알아. 그리고 내면도 역겨워)’

‘I found me a wife - This is so normal! (아내를 찾았고, 너무 정상적이야! - 비틀쥬스 파트)’

‘God be glorified! (신께 영광이 있으리)’


이 말도 안 되는 결혼식에서 부르는 노래 가사 중 일부이다. 그리고 내가 웃게 되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진심과 상황을 넘기려는 말이 오묘하게 섞여 있다. 비틀쥬스가 가족들의 속셈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진심들을 숨겨놨다. 이 중에서 나이 차이가 (심하게) 많이 나는 남녀의 관계를 다룬 영화인 ‘롤리타’를 언급한 가사는 리디아의 아버지가 부르는 파트다. 수백 년 묵은 악령이 10대인 자신의 딸을 넘보는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자신의 ‘어이없음’과 ‘분노’를 은근슬쩍 드러낸다. 그리고 리디아와의 결혼을 바로 눈앞에 두고 이 ‘정상적인 상황’에 행복해하는 비틀쥬스의 모습은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와중에서 최고는 배우들이 흥겹게 노래하다가 제4의 벽을 깨고 관객들에게 직접 말하는 이 가사다.


 ‘I can’t believe some cultures think this kind of thing’s alright. (몇몇 문화에서 이런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니 믿을 수 없네요)’


B급 컬트 뮤지컬의 모든 것이 담긴 노래


<록키 호러 쇼>가 등장한 이후로 B급 컬트 뮤지컬이 간간히 등장하고 있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이자 특징은 현실을 비웃는 ‘돌려 까기’라고 할 수 있다. 우울한 상황을 잊기 위해 하느님에게 ‘엿’을 날리는 우간다 사람들, 고민이 있거나,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있을 땐 그냥 생각을 하지 말라고 상큼하게 말하던 몰몬교도들이 등장하는 ‘북 오브 몰몬’이 가장 최근의 메가 히트작이였다. 그리고 <비틀쥬스>가 그 뒤를 잇는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이 작품에서 B급 컬트 뮤지컬의 ‘돌려 까기’가 모두 담긴 곡이 바로 Creepy Old Guy. 이 노래를 들으면서 혼자 피식피식 웃다 보면 어느 순간 ‘크리피 올드 가이~~’를 흥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s)

나름 최신 뮤지컬인데 이게 벌써 우리나라에 들어온다고 한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브로드웨이가 셧다운되면서 최신 작품들이 많이 수출되고 있다. 

일본에는 <웨이트리스>,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영화화해서 화제가 되었던 <더 프롬>이 공연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6월 중에 <비틀쥬스>가 개막하고 2019년 토니상을 수상한 <하데스타운>이 곧 개막한다고 한다.

써놓기만 하고 올리지 않고 있던 이 글을 올리게 된 계기..ㅎㅎ

언젠간 보고싶었던 극들이 코시국으로 좀 더 빠르게 볼 수 있게 되다니.. 그저 환영할 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변화를 위한 대가, <팔과 다리의 가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