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 끝나기 약 한달 전, 기다리던 뮤지컬 영화 <틱틱붐>이 공개되었다. 25살에 봤던 틱틱붐은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를 갖고 있는 뮤지컬이였지만, 30살이 되기 한달 전 본 틱틱붐은...
가사, 대사 한줄한줄이 뼈를 때리는 뮤지컬이였다.
They're singing "Happy Birthday".
You just want to lay down and cry.
Not just another birthday, it's 30/90.
Why can't you stay 29? Hell, you still feel like you're 22.
Turn 30, 1990. Bang! You're dead What can you do? - ‘30/90’ 중에서
2017년 즈음... 몇 번 봤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열심히 봤던 뮤지컬, <틱틱붐>. 그 땐 지금보다 좀 어렸던 까닭에 서른살을 앞둔 주인공의 절박하고 불안한 심정에 공감을 하지는 못했지만 뮤지컬 <렌트>를 너무너무너무 좋아했고, 톡톡 튀고 재치있는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에 매료되어 시간이 날 때마다 대학로에 출근을 했었다.
이렇게 틱틱붐에 한 계절의 반 정도를 불태우고 기억 속에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소문으로만 들었던 틱틱붐의 영화가 공개되었다. 21세기 브로드웨이에서 탄생한 천재, 린 마누엘 미란다의 연출만으로도 기대되는데, 앤드류 가필드, 바네사 허진스라니..! 몇 개월동안 이 영화가 공개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30살이 되기 40여일 전 기다리고 기다리던 틱틱붐을 볼 수 있었다. (글을 올리는 오늘은 하루 전이지만.)
틱틱붐은 1990년대 브로드웨이를 뒤흔들었던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이자 제작가인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다. 원래는 조너선 라슨이 직접 출연하는 1인극으로 기획되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나며 사라질 뻔한 작품이다. 조너선 라슨의 죽음과 그의 천재성을 안타까워 했던 동료들이 <틱틱붐>을 다시 다듬어 3인극으로 수정해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틱틱붐은 무려 8년동안이나 매달려 온 뮤지컬 <슈퍼비아>의 워크샵을 앞둔, 그리고 30세가 되는 생일을 앞둔 29세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원작은 조나단 라슨(존)과 연인인 수잔(카레나 등 다역 연기), 절친 마이클(그 외 다역 연기) 3명이 등장하여 극이 진행되지만, 영화는 모든 배역을 각각 다른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무대 예술을 정말 똑똑하게 스크린으로 옮겼다는 것이였다. 감독인 린 마누엘 미란다는 <틱틱붐>의 존으로 직접 공연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을 살려 영상화에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
영화 <틱틱붐>은 30세가 되는 생일을 앞둔 조나단(이하 존)의 시점이 아닌, 슈퍼비아의 워크샵 이후 새로 도전한 뮤지컬 <틱틱붐>의 워크샵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조나단 라슨이 1인극으로 기획했던 그 틱틱붐이 거의 그대로 재현된다. (영화 속에선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이 따로 있긴 했지만) 무대 위 조나단 라슨의 대사를 통해 30세를 앞두었던 그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그 시절의 이야기는 회상 장면으로 보여진다.
원작은 무대 변환같은 것은 없고, 단순한 소품들과 관객의 상상력으로 시간, 공간의 변화, 주인공들의 심리를 표현해야했기 때문에, 존의 30세 생일을 앞둔 시점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극중극 포맷으로 바꾼 린 마누엘 미란다의 똑똑한 결정이 돋보인다. 원래도 자전적 스토리였지만, 틱틱붐 워크샵에서 조나단 라슨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모노드라마 속에서 슈퍼비아 워크샵을 앞두었던 그 때 이야기를 하고,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꼐 남아있는 영상자료들을 덧붙이고 재현해서, 존의 감정은 더욱 세밀하게, 다소 불친절했던 스토리라인은 더 친절하게 표현되었다.
이 것에 더해서 새로운 구성에 맞지 않는 곡(ex. 존이 썼다는 이상한 설탕노래는 원작에서 존의 초콜렛 찬양 노래인 듯)들은 과감하게 쳐내고, 원작에는 없었던 ‘슈퍼비아’의 노래를 추가했다.
특히 슈퍼비아의 노래가 추가된 것은 존의 음악적 재능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원작만 봤던 나로서는 ‘슈퍼비아’가 무슨 병맛 sf 뮤지컬인 줄 알았다. 뜻밖에도 노래가 좋아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존이 시범공연에 신시사이저, 밴드를 넣자고 주장을 하던 장면은 여건이 좋지 않은데, 꿈만 큰 청년 예술가의 허황된 생각을 표현한 것 같았는데, 음악이 훨씬 더 좋아지는 것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렌트’ 이전의 조나단 라슨은 이미 뛰어난 천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상고객 환장쇼(+카메오 파티)였던 ‘Sunday’ 장면은 단순히 힘들게 알바하는 존의 모습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천재 조나단 라슨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그만의 상상의 나래를 살짝 엿보는 느낌이 든다. 이런 장면들은 <틱틱붐>이 영화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선택, 연출이었다.
그리고 존이 담담하고도 유쾌하게 푸는 자신의 이야기와 감정들은 쌓이고 쌓여서, ‘Come to your senses’, ‘Why’ 등의 노래로 폭발한다. 연인인 수잔과의 쌓인 기억, 감정을 다시 자각하고, 자신의 힘듦, 아픔에만 골몰하다가 친구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된 자책, 슬픔, 반성, 그리고 비를 맞으며 친구에게 달려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까지... 존의 이야기는 차근차근 결말을 향해 간다.
이 모든 일들을 겪은 존의 결론은 마지막 곡 ‘Louder than words’에 담긴다.
30세가 되면 어른이 되어야할 것 같은데, 그 앞에서 내가 왜 벌써 서른이 되어야하는지 몸부림을 치던 존은 결국, 슈퍼비아의 실패를 딛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나이만 먹은 어른이 아니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어른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존이 파란만장한 20대를 겪고 지나온 뒤 내린 결론이다. 이렇게 존은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선택한다. 그런 존을 응원하는 에이전트인 로자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계속해서 쓰는거지. 그게 작가야.
그렇게 계속 써 재끼면서 언젠가 하나 터지길 바라는 거라고.
한두개의 실패에 연연해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이게 작가만을 위한 충고일까. 누구든 계속해서 움직여야하고, 실패에 절망해서 멈추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래서 존은 관객에게 말한다.
Cages or wings, which do you prefer?
Ask the birds
Fear or love, don’t say the answer.
Action speaks louder than words.
새장 속 세상, 공포, 그리고 날개, 사랑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말할 필요는 없다. 그저 행동으로 옮겨라.
이것이 최고의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목표에 인생을 불태운 조나단 라슨의 응원이 아닐까 한다.
20대가 끝난 이후의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조나단 라슨의 응원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p.s.
천재가 천재를 덕질한 결과물.
중간 중간 카메오파티에 20~21세기 브로드웨이의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기회가 되면 이 부분도 조금 다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