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싱가포르가 참 좋다.
나라가 작아 웬만한 곳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것도,
거리가 깨끗하고 건축물의 모양이 다 달라 걷는 즐거움이 있는 것도,
덥거나 비가 오면 지하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것도.
이 작은 땅에서 슈퍼트리나 마리나베이샌즈나 창이공항의 인공폭포처럼 말도 안 되는 스케일의 건물이 있는 것도,
더운 날씨 덕분에 밤에 더 활기찬 것도,
그런데 어른아이 국내외 사람 할 것 없이 그 활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도.
칼 같은 원리원칙 덕분에 안전하고 깨끗한 것도,
그 원리원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무엇이든 포용하는 것도 참 좋다.
이 서울만한 나라가 어떻게 해야 자신들이 매력적으로 보일지 너무 잘 아는 것도 너무 좋다.
(물론 내가 싱가포르에 대해 한 단면만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작년 여름, 기대 없이 휴가 일정에 맞춰 싱가포르를 다녀왔는데, 아니 글쎄, 이 나라 알면 알수록 너무 재밌는 거다.
우선 2대째 세습을 이어온 독재주의면서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다.
게다가 이번엔 이씨 가문이 아닌 새로운 가문의 총리를 위임했는데, 어떻게 독재 체재에서 다른 가문에 총리를 넘길 수가 있지?
그것도 본인이 먼저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고 새 총리가 적응하기 까지 무려 3년간이나 인수인계 기간을 가졌다.
싱가포르에 사는 친구 말로는 대체적으로 싱가포르의 이런 정치 체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5년마다 바뀌는 민주주의 체제인 우리 나라에서도 여러가지 정치적인 문제점이 많은데, 우리는 정권이 바뀔때마다 휙휙 바뀌는 정치 체제를 얘네는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지킬 수 있지?
거기다 원리원칙을 하도 철저히 지키고 형벌도 어마무시하다길래 잘못 걸리면 큰일 나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놀 수 있는 판은 어떻게 이렇게 또 잘 깔아주는 건데!
매일 밤 공짜로 열리는 엄청난 스케일의 슈퍼트리쇼 (돈 주고라도 볼텐데..!).
쓰레기는 함부로 못 버리면서 싱가포르 최고가 호텔 중 하나인 래플스 호텔 내 롱바 (Long Bar) 바닥에 마구잡이로 버리는 땅콩껍질.
이 재밌는 문화를 도저히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작은 나라에서 가진 것은 인재밖에 없기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포용한다.
사람들의 창의성에 제약을 두지 않는 포용적 문화는 마리나 베이 샌즈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쥬얼 창이, 거기에 수많은 창의적인 건축물을 만든다.
포용의 문화는 나라 사이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십분 활용하고, 해외의 자본, 사람을 끌어올 줄 안다. 한마디로 어떻게 해야 본인들이 매력적으로 보일지 안다.
자본으로 문화와 엔터테인먼트를 만든다. 그러나 타락하지 않았다.
철저한 원칙 아래 깨끗하고 깔끔하다. 그래서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싱가포르에는 아이를 위한 공간이 많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의 문화는 건강하다.
나는 싱가포르가 이렇게 매력적인 도시국가가 된 것은 명확한 방향성, 그리고 원칙 덕분이라고 보았다.
명확한 원칙이 있기에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건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싱가포르에 사는 친구한테 했더니, 친구가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다.
싱가포르는 지금 현재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데 혈안이라는 것이다.
독립된지 얼마 되지않은데다 시작부터 본인들이 원치않은 얼렁뚱땅 독립이었고 역사가 짧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백지에 그림을 그려가야 했다.
그 때문에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는 혁신이라고 정의하고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뭐든 다 해 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밀어주는 문화가 깔려 있는 것이다. 마치 나라계의 스타트업이랄까.
싱가포르에 다녀온 후, 한 도시를 매력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건
도시 내의 좋은 브랜드와 콘텐츠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개인이 만든 좋은 공간 브랜드와 콘텐츠가 아닌,
도시 인프라와 행정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을 모으고,
좋은 기업과 자본을 끌어들이고,
결국은 그 도시의 브랜딩을 해나가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구심에는, 도시가 갖고있는 고유의 스토리가 필요하다.
마리나베이 샌즈가 말도안되는 건축 디자인이 가능했던것도 공무원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국가의 매력도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참고할 부분이 굉장히 많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싱가포르를 더 적극적으로 디깅 하기로 결심했다. 싱가포르는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 곳이다. 싱가포르는 궁극적으로 도시 브랜딩을 꿈꾸는 나에게 뭔가를 보여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본, 들은, 알고 있는, 경험한 싱가포르를 차근차근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