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취하다, 전통을 취하다.
취 프로젝트는 전통 공예 장인 선생님들과 협업하여 현대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제작하는 한국 전통문화 플랫폼입니다. 장인 선생님의 기술과 이야기, 재료의 고유함이 현대인들의 삶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합니다.
SUBI 마미체 전통 자 거름망과 커피 필터는 취 프로젝트와 국내 유일 마미체 공예 선생님, 백경현 선생님이 함께 협업해 제안하는 말총 공예 제품입니다. 오로지 말 꼬리털, 옻칠, 명주실, 그리고 대나무로만 제작되는 이 제품들은 많은 소비자분들께 그 유용한 쓰임과 아름다움, 그리고 반영구적인 특성으로 사랑받았습니다.
저번 주말, 취 프로젝트는 사천을 방문해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모든 일정이 끝난 늦은 오후, 마미체로 내린 커피를 나누며 선생님의 시간, 공예, 그리고 전통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백경현 선생님. 간단히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공예인입니다. 공예란 '사람에게 이로운 기물을 만드는 것’이라는 전통 개념을 간직하고 삽니다. 공예인이기 전에는 시간과의 전쟁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것 같고, 지금은 또 다른 시간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 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간을 잘 보내는가가 최대의 관심사가 된 연령이 되었거든요.
직장인의 삶을 마무리시고, 전통 공예, 그중 마미체를 만들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믿길지 모르겠지만, 인생 2막으로 준비했던 것인데 실제로 밥벌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직장 생활 마무리는 재취업이 안되어 반 강제로 마무리된 것입니다. 마미체는 서울시 무형문화재에 관심을 갖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사라져 가는 전통공예이며, 대를 이을 제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배워두면 국가무형문화재가 자동으로 될 것으로 생각했죠. 길을 걷는 것과 그저 아는 것의 차이는 아주 컸죠. 공예인이 되어보니, 그 길은 아주 멀었습니다.
마미체라는 전통 공예품을 만들고, 그 길을 스스로 넓히시면서 다양한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말총 거름망 공예인이 되시기까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마미체만 만들었습니다. 체질에 맞았어요. 하지만 마미체는 한계가 너무 눈에 보였어요. 생산성도 안 나오고 설사 판매가 된다 하여도 수명에 한계가 있었죠. 말총이 튼튼해도 틀이 나무라, 물에 젖으면 썩기 십상입니다. 덕분에 남아있는 문화재가 없을 정도입니다.
궁여지책으로 옻칠을 했습니다. 옻칠은 물에 강하고 장점이 많았죠. 옻칠한 마미체로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장려상도 두 번 수상하고 수차례 특선 입선을 하면서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회원으로 한동안 활동했죠. 그때 누군가 작가라 불러줘도 덜 민망하다는 생각을 살짝 했던 것 같네요.
하지만 문제는 생활이었습니다. 수요가 있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께서도 꾸준히 고민하시고 노력하셨지만 돌파구를 찾지는 못하셨습니다. 마미체란 게 말총망이 기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 거름망을 만드려고 꾸준히 노력하셨지만 디자인이란 게 또 만만한 게 아니죠. 나무를 깎고 그 안을 체로 메우는 방식으로 시도하셨지만 나무가 벌어지며 번번이 쳇불이 터졌습니다.
저 또한 말총 차 거름망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고안한 제품은 두 가지였는데요. 하나는 조금 쓰임을 변경한 말차체였습니다. 말차를 즐기기 전, 그 가루를 한 번 거르는 체입니다. 차 거름망보다 편평한 말차체가 더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롱박을 - 예전에 조롱박 공예품이 유행했어요 - 구입해서 삶고 바느질하고 칠해서 차 거름망 틀로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미체를 촘촘하게 짜는 세(細) 마미체는 구전으로만 전해졌지 선생님께서도 모르셨죠.
조롱박에 바느질로 고정하니 말총이 뻣뻣해 디테일이 살지 않더군요. 어찌어찌 말차체를 만들었지만 수요가 없었습니다. 촘촘한 말총망을 만들어 제작한 조롱박 차 거름망은 거치대가 없어, 지인 분께서 보다 편한 차 거름망을 요구하셨어요.
저는 훈수를 좋아합니다. 디자인에 착수했죠. 기존에 만들고 있던 원뿔형 커피필터의 크기를 줄여서 손잡이나 거치대를 부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통 공예 중 두석장에 영감을 받아, 청동 못을 구입해서 대나무 뿌리 거치대를 박았았습니다. 숙우에 걸치게 말이죠.
이후 마르쉐 마켓에서 만난 지인 선생님이 가로지르는 거치대를 만들어 보라는 훈수를 또 하셨습니다. 귀가한 즉시 대나무 가지를 찔러보았습니다. 이후 차츰 디테일을 보안하며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제 나이가 환갑이고, 직장 생활을 할 시 꽤나 성공적인 회사원이었습니다. 제가 회사원으로 살았던 시대,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 시대는 신자유주의 시대 아닙니까? 자본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시대에 살고 있죠. 그런 시대를 고스란히 관통하며 살았고 사실 지금도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알고 있고 보이던 그 세계에서 집착을 떨쳐내는 과정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신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파고에서 살짝 벗어난 지금 겨우 전통공예인이 되어 가는 듯합니다. 언제든 훈수는 환영입니다.
마미체를 만드실 때, 선생님의 가장 큰 가치와 기준이 있으신가요?
공예인으로서 큰 가치와 기준은 없어요. 다만, 전통 공예인은 문화유산헌장과 문화재보호법이란 기준이 있죠. 그런 법률들 때문에 사람들은 전통 공예에 대해 보존할 필요성을 심히 느끼지만, 이를 발전시키는 것에 대해선 의문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저는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느낍니다.
제작에 기준은 있어요. 오브제로도, 물건으로도 무조건 예뻐야 합니다. 그러므로 공정을 빼거나 줄이지 않습니다. 옻칠을 하다 보면 한 번쯤 생각하게 되죠. 조금 덜 칠해도 모를 거라고요. 훈수를 좋아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만드는 내가 눈에 보이니, 돈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구매자도 당연히 알겠죠. 입장 바꿔보면 쉽지 않나요?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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