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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t Cracker Dec 16. 2023

언젠가 당당히 게임을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 젠더살롱 


여전히 나의 최애 취미는 게임이다. 플스로 '호그와트 레거시'를 하며 열심히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쓰고 다녔고 최근에는 배틀그라운드에서 거의 매일 밤 친구들을 만난다. 게임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논란이 황당하기 그지 없다. 다종다양하게 사건을 분석하며 직업윤리 운운하는 사람들도 봤지만, 아무래도 이 사건의 핵심은 게임계에 뿌리깊게 자리한 여성혐오라 단언할 수 있다. 


게임 커뮤니티의 여성혐오 역사는 유구하다. 이를테면 여성가족부에서 죠리퐁 판매를 금지시키려고 했다는 클래식한 루머부터 뻔하디 뻔한 여가부 예산 낭비 타령과 열등감에서 비롯된 페미니즘 조롱 시리즈까지. 그 일련의 태도로 미루어 보면 이 사건을 보면,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투명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게임에서만큼은 계속 여성혐오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이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들어줄 필요도 없다. 게이머들이, 남성들이 "대체 누가 이딴 헛소리를 자꾸 반복하는거야?"라는 자성의 반응이 나올 수 있도록 초점을 옮겨가고 싶었다. 




<언젠가 당당히 게임을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까>

: 게이머와 게임업계 위축시키는 여성혐오 



한참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도 게임은 나의 가장 열정적이고 오랜 취미다. PC게임부터 콘솔게임까지 두루 섭렵하고 잘 만든 게임은 예술과 구분할 수 없다고 믿는 과몰입 끝판왕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변에서 취미가 무엇이냐 물으면 게임이라는 대답은 항상 후순위로 밀렸다. 운동, 독서, 영화, 쇼핑 같은 것들을 줄줄이 말한 후, 충분히 관계가 쌓였다 싶으면 그제야 수줍게 사실 게임도 좋아한다고 밝혔다. 많은 게이머가 이런 반응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어떤 이들에게 게임은 여전히 청소년 때나 하는 유치한 취미활동으로 여겨진다. 대개는 그러려니 하지만 또 권장할 만한 취미로 여기지는 않고 나아가 폭력성을 유발하거나 중독자를 양산하는 음침하고 부정적인 활동으로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



사실 처음 일부 게임 유저들로부터 이런 반응이 나왔을 때에는 ‘새삼스럽게 뭘 또’ 같은 느낌이었다. 각종 게임 커뮤니티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이미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여성가족부나 페미니즘을 향한 조롱 섞인 게시물은 늘 있어왔다. 뭐 대단히 여성 혐오적인 콘텐츠에 동의하고 즐기는 유저가 아니라 할지라도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여성 캐릭터에, 여성 유저를 향한 말에 어느 정도 성차별적 요소가 섞여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수년째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LOL), 이른바 '롤'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청소년들에게 롤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를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금세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 이름이 쏟아진다. 가렌, 다리우스, 야스오, 루시안 등 멋지게 꾸며진 캐릭터의 옷과 몸을 살펴보게 한다. 이어서 여성 캐릭터들도 찾아보게 한다. 아리, 케이틀린, 애쉬, 미스포춘 등 또 각종 캐릭터가 나온다. 이들의 옷과 몸은 확연히 다르다. 게임에서처럼 전투에 나가게 된다면 어떤 옷을 입겠냐는 물음에 당연히 더 탄탄한 갑옷으로 무장한 남성 캐릭터들의 옷을 고른다. 사냥을 하고 레벨을 올리는 전투 RPG 게임도 마찬가지여서 ‘여성 캐릭터의 레벨은 노출도에 비례한다’는 말을 관용구처럼 쓸 정도였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12131422000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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