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 일지>를 보고
나를 추앙해요
대사를 듣는 순간, 멍 해졌다. ‘사랑’이나 ‘존경’ 같은 말이 나올 줄 알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사랑, 존경과 추앙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추앙하다: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
사랑하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존경하다: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다.
세 단어 중 사랑은 확실히 다르다. 사랑은 누군가를 귀중히 여기지만 우러러보거나 공경하지는 않는다. 추앙과 존경은 미세한 차이가 있다. 존경에는 이유가 확실하다.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야 한다. 추앙에는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가 확실치 않다. 존경과 추앙이 다른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 존경에는 기한이 없지만 추앙은 언제든 끝낼 수 있는 기한이 있다. 대상이 나를 실망시킨다면 언제든 추앙을 그만둘 수 있다.
사랑에도 기한은 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불안과 걱정이 함께 온다. 상대가 나에 대한 사랑을 거두면 어쩌나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 사랑의 끝은 늘 얼룩덜룩하다. 하지만 추앙의 끝은 추억이나 감정으로 얼룩져 있지 않을 것 같다. 사랑은 내가 해야만 하고, 추앙은 내가 하지 않아도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니 사랑과는 다르게 마음의 부채 따위는 없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누군가를 추앙했던 적이 있었나. 추앙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추앙이라는 단어를 생경하게 느꼈던 이유는 경험해보지 못해서였다. 나는 추앙을 해보지도 그 대상이 되어 보지도 못했다. 앞으로 살면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만약 누군가 나를 추앙한다면 너무 두려워서 몸서리를 치며 도망가 버릴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누군가에게 내뱉고 싶은 한 마디가 아닐까. 조건 없이 나를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봐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찬 하루를 조금 쉽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해방 일지>에서 주인공(염미정)이 출근길 보이는 교회 간판 문구)
주인공에게 ‘추앙’은 좋은 일이다. 누군가 나를 높이 받들어 우러러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인공은 충만해진다. 사랑처럼 더 이상 누군가의 마음을 갈망하지 않아도 되니까. 추앙은 절대적이니 불안하지 않다.
누구나 채워지지 않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사랑을 해도 존경을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 공허함은 모두에게 있다. 아무도 모르는 근원적인 자신만의 동굴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니까. 사랑은 늘 노력과 최선이라는 행동과 실천이 따라야 하지만 추앙에는 절대적인 시선 하나면 된다. 갈망하지 않아도 되는 절대적 마음.
위로나 위안 따위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가진 서로에게 ‘추앙’을 선물하자. 마음의 부채 없이 서로의 마음을 채워준다면 좋은 일 하나는 버는 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