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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결 Aug 22. 2021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면

2021.08.22.

주일 예배를 드리고 카페에 들러 책을 좀 읽다가 집에 가는 길에 근처 빵집에서 빵을 샀다.

원래 점심에 먹을 프레즐이나 치아바타 하나만 사려고 했는데 다 맛있어 보여서 둘 다 사고 퀸아망까지 샀다.


다 사고 나오는데 집으로 가는 방향의 보도블록에 한 할아버지가 앉아있었다.

가면서 자세히 보니 숙식을 제대로 하지 않으신 모습이었다. 눈빛에 힘이 없고, 초점도 잘 맞지 않으셨다.

앉은자리 주위로 담배꽁초가 많은 걸 보니 아마도 그 자리에서 한 동안 줄담배만 피고 계셨던 것 같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분은 품에서 꺼내던 파란 담배값을 다시 옷 속으로 넣으셨고, 나는 그 도로의 왼편으로 발걸음을 꺾어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 여덟 발자국쯤 걸었을 때, 나는 지금 생각했던 것보다 빵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과 방금 본 그분은 아마도 식사를 제대로 못 하신 것 같다는 두 현상이 맞물렸다. 그리고 정말 미세하게 작고 부드러운 마음의 소리로 "저분에게 빵을 나눠주겠니?" 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 음성의 느낌은 '물음'이고 '권유'였다. '강요'는 아니었다. 나는 두 발짝을 더 걸으며, 그 노인 분과는 두 발짝 더 멀어지며 마음의 소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빵 자체야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나누는 것이 괜히 내 오지랖일 수도 있고, 그분이 기분 나쁘게 여길 수도 있고, 누가 보면 착한 척하는 것 같아 보일까 봐 부끄럽기도 하고...  한 5초쯤 되던 그 짧은 순간에 오만 생각과 판단이 오갔다.


하지만 순종해보기로 했다.

부끄러움은 나중의 내 몫이고, 안 해서 후회하느니 해서 후회하는 것이 나을 "선행"이지 않은가 싶었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책에서도 '이 땅의 재물을 하늘의 재물로 바꾸는 나눔'에 대해 읽기도 했었고...)


결심한 후에는 빠르게 뒤를 돌았다.

다시 오던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혹시나 내 마음 바뀔까 봐. 가서 그분 앞에 서서 여쭈었다.

"어르신 혹시 식사하셨어요?"

초점 없는 눈동자로 나를 보시며 잘 안 들리셨는지 말은 없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서 한번 더 "혹시 식사하셨나요? 제가 빵을 좀 많이 사서..." 하면서 마지막에 골랐던 퀸아망을 드렸다.

그분은 끝까지 말이나 대답은 안 하셨지만 옅은 미소를 띠며 빵을 받으셨다. 

그리고 짧게 목례를 나누고 받은 빵을 자신의 왼편에 내려두셨다. 나도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잠깐 뒤돌아보니 그분은 다시 같은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먼 곳을 보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니 '말이라도 더 붙여볼걸 그랬나, "예수님이 주시는 거예요."라고 주님 사랑을 전할 걸 그랬나. 너무 앞 뒤 없이 빵만 드린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이 땅의 양식도 나누지만 하늘의 양식도 나누지 못한 소심하고 비겁한 작은 마음을 원망하며,

"하나님 다음에는 기회를 주시면 예수님도 전할게요. 오늘 저는 그 얘기는 못했지만, 저분이 하나님을 알게 해 주세요." 하고 속으로 기도했다.


집에 도착해서 사 온 빵으로 점심을 먹고, 매일 빼먹지 않기로 어제부터 다짐했기 때문에 묵상집을 폈다.

어제는 다짐만 하고 정작 묵상집을 보지 못해서 어제 날짜를 먼저 보니 이런 구절이 있었다.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아름다운 성품은 언제나 무의식적인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교만 또는 비기독교적인 것입니다. 만일 '내가 유용한 존재인가'에 초점을 두기 시작하면 나는 곧 주님의 풍성하신 손길을 잃게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한영 합본), 8월 21일>


아까 길에서 물질적인 나눔에 복음을 끼어 팔려고 했던 잠깐의 계산적인 마음을 회개하면서, 동시에 선행 자체로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한결 평안해졌다. 일상에서 온유한 성격 그 자체로 사랑을 실천하는 삶. 그리고 그 사랑 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지기를 기도하는 삶. 그것부터 해도 되겠다는 가벼운 마음을 주셔서 감사하다.

그리고 오늘처럼 순간마다 작은 소리로 부드러운 권유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네! 할게요!" 하는 결단과 선행으로 살아가 보면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성경에는 작은 것이 큰 것이고, 큰 것이 작은 것이라는 내용의 말씀이 정말 많다. 내가 알던 작고 큼이 아닌 하나님 기준에서의 작고 큰 것을 배워가 보고 싶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누가복음 16:10)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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