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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결 Sep 02. 2021

가을, 2학기.

포기하기엔 이르고, 시작하기엔 늦지 않은.

9월이 되었다.

최고 기온은 더 이상 30도까지 오르지 않고 최저 기온은 심지어 20도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a 년, 대학원 4+a학기를 보내는 동안 2학기는 대부분 설레고 기대되는 학기였다.

1학기란 낯설고 적응할 것이 많고 봄 벚꽃에 설레고 더워지는 여름을 맞느라 학업에 집중하가 어려운 학기였다. 한편, 2학기는 더위와 습기가 사그라들고 해가 짧아지면서 전반적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연말에는 종결감과 성탄절이 오면서 무언가에 집중한 결과를 보는 학기였다.


학창 시절 중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는 가을이 두 번 있다.


하나는 중학교 3학년 때,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의 가을이다. 그 두 번의 가을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열심히 보냈던 시간들이다.


내가 살던 동네는 시험을 봐서 고등학교를 가야 해서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시험 대비 모의고사집을 사서 빨간 플러스펜과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열심히 풀고 필기하고 오답 노트를 만드는 나날들이었다. 인생에서 단 하나에 매진하던 시기. "설마 고등학교를 떨어지면... 아냐. 그건 아니지. 그럴 리 없지... 만 혹시?" 하는 불안함과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으로 보내던 시간이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 당시의 나'는 그때에만 존재하는 나였다. 참으로 성실하고 겸손하고 똑똑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기특한 열여섯 청춘이었다.




감사하게도 연합 고사를 잘 치러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갔다. 마음에 드는 교복을 입고 새 학교에 적응해갔다. 시험을 봐서 온 비슷한 친구들이 모여서 그런지, 고등학교 첫 시험 등수는 그전까지 받아본 적이 없는 숫자였다. 너무 큰 바닥을 치니 좌절스럽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처음에는 부끄럽고 수치스럽긴 했지만, 꽤나 금방 "아, 나는 이 정도인가 보다."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공부는 중학교 때보다 그 양도 많고 진도도 빨라서 선행 학습도 하지 않고 학원도 다니지 않았던 내가 따라가기에는 많이 벅찼기 때문이다. '하긴 하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듣고 숙제를 했다.


그렇게 1학년, 2학년, 그리고 3학년 1학기를 보냈다. 모르지만 성실했다. 틀리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자리는 지켜서 하기는 했다. 대신 재밌고 잘할 수 있는 것들은 한껏 즐기면서 밑바닥 등수 인생의 삶에 일말의 원동력을 삼았다. 예를 들면, 미술 수행평가라든지 체육 수행평가라든지, 화학 실험 실습이라든지, 중국어 수행평가라든지...

성적이 오르거나 등수가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바르게 살아가는 중에 머리는 조금씩 똑똑해지고 있었나 보다. 드디어 뭔가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능까지의 시간은 얼마 안 남았는데 도저히 자율 학습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특히 수학. 이과였는데 수학이랑 과탐이 내신도 난리, 모의고사도 난리였다. 그래서 3학년부터는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3학년 2학기 가을 어느 날,

창가에서 춘추복을 입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그날도 강의를 듣고 있다가

"아? 이게 수학이야? 와. 이런 거였어?"

하면서 수학에 숨겨진 원리(?) 같은 어떤 것을 느낀 날이 있었다. 그날, 그 감정을 시작으로 수학의 추상적인 것들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x', 'y', 'f(x)'로 왜 쓰는지 몰랐던 함수 식들도 우리가   없지만 느끼는 어떤 규칙을 보면서 이해하고 응용할  있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놀라웠다. 그 전까지의 수학 공부는 제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3학년 2학기였다. 수능까지는 길어야 2개월이 남은 시점이었다. 그래도 그 기쁨과 즐거움으로 남은 2개월의 기적을 이뤄보리라며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다소 불안해하면서도 정말 즐겁게 공부했다.




당연히 수능은 망했다. 이과에서 수리 가형을 6등급을 맞았으니 목표한 학과는 당연히 못 가고, 서울 안의 대학도 갈 수 없는 성적이었다. 게다가 충격받고 실망하신 부모님 덕분에(?) 원서 한 곳도 써보지 못하고 바로 재수를 했다. 수리 점수가 심각해서 문과로 바꿨다. 그런데 기적은 이때부터 일어났다. 3학년 2학기의 늦은 가을에 얻은 그 통찰력으로 재수 생활의 수학 공부는 날개 돋듯 순탄하게 할 수 있었다. 고3 때는 수업 후에 선생님께 뭘 물어볼 수도 없는 수준이었는데, 재수 학원에서는 누가 봐도 수학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다. 수업 후에 항상 심화 질문도 하고 선생님의 답변을 통해 수학적 사고력을 더욱 키워갔다. 그렇게 수리 가형 6등급에서 시작한 재수 생활은 수리 나형 1등급으로 마쳤다.


이 과정을 오늘에서야 돌이켜보니 새로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특정 시기에 얽매여서 두려움이나 애먼 걱정으로 하던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의 내가 "하.. 이제 와서 깨달으면 뭐해. 수능 두 달 남았는데. 그냥 다른 과목이나 더 하자." 했더라면, 내 삶에서 수리적 사고력은 영영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첫 수능과 두 번째 수능 이후에도 학부 전공, 대학원 전공, 그리고 지금 직무에도 수학은 쓰이고 있다. 수리적 사고력 덕분에 인생에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분야도 더 늘어났다. 수학은 절대 그 한 번의 수능에만 쓰고 말 것이 아니었다.



살다 보면 기한이 있거나 요구 수준이 있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그 기한이나 요구 수준의 틀에 현재의 나를 재어보면 택도 없이 모자라서 감히 시도도 못하고 좌절하거나 불안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한이나 요구 수준은 내가 그 분야를 벗어나면 별일 아닌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많은 경우에서 그 기한과 요구 수준은 단기적이고 수단적인 '목표'이다. 모든 욕심을 내쳐버리고 최소로 필요한 것만 남겼을 때에도 남아있을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어떤 미련도 없이 끝낼 수 있을 때가 아니라면, 기한과 요구 수준 너머에 다다라야 할 목적이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보자.


1년의 절반이 지났지만, 12월을 목표로 새로 공부하는 것이 생겼다. 그 공부도 인생 내내 해야 할 공부이다. 12월까지 못해도 평생 할 각오로 시작을 해본다. 하지만, 오랜만에 일 년 중 그나마 공부를 좀 해볼 만한 이 계절을 놓치기 싫은 욕심이 생겼다. 4개월을 성실하게 보내면서 이번 성탄절에는 스스로에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지식과 지혜를 선물을 하고 싶다. 12월에 다시 이 글로 돌아와서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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