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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결 Jan 12. 2022

신입의 퇴사

죽을 만큼 힘들다면 그곳을 나와도 괜찮아요.

최근 '과로 자살'에 대한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뉴스를 보며 문득 첫 직장을 떠나기 직전의 마지막 날들이 떠오른다. 나의 첫 직장은 대학원 졸업 논문 심사가 늦어져서 한 학기 졸업이 연기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지원하여 4차에 걸친 채용 과정을 걸쳐 합격했던 판교의 어느 회사였다. 


처음 6개월은 수습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통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신입이니까 회사 근처로 이사할 것을 권하던 곳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관 검색어가 '야근'인 회사였다. 어쩐지 샤워실과 수면실이 있더니만.

신입일 때는 주 52시간 근무제도도 없었다. 1년 차에 배운 것 중에 하나가 '팀장님의 기분과 타이밍 봐서 퇴근하는 스킬'이었다. 

수습기간이 끝나 정직원이 되고, 대표 이사의 관심이 한껏 쏠려있는 신사업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매 월 대표 이사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자리에도 참석해야 했었다. 리더들은 대표 이사와 함께 미팅할 수 있다는 것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이 신입인 나에게는 대단히 좋은 기회인 것처럼 독려했다. 그런데 '야근하고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는'는 의미를 곁들여...


지금 생각해보면 끝없는 야근의 날들, 인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대표 이사의 폭언, 강약약강+내로남불이었던 파트장과 직속 후배와의 관계를 참아낸 매일매일로 얻은 것은 상처뿐이었다. 그곳에서 출시했던 제품은 여러 회사에서 많이 쓰게 되었지만, 지금의 내 인생이나 커리어에 한 획을 그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경험한 '공감 능력이나 양심은 없는 것만 같은 사람들' 소수의 사람들로 인한 상처는 크게 남았다. 그리고 20대에 더 기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우울하고 덜 건강하게 살아버린 몸만 남아 있었다.


좀비처럼 3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을 참은 끝에 마주하게 된 대표 이사의 성추행 발언과 일 못하는 파트장의 막말과 인내하며 가르쳐서 끌어올려줬지만 안하무인으로 돌변한 후배로 인해 더 이상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었다. 출근길에는 지하철이 탈선해서 크게 다쳐서 입원하길 소망했고, 퇴근길에는 도로로 뛰어들거나 도로의 차가 나에게 덮쳐오길 희망했다. 판교의 멋진 IT맨이길 바라던 이전의 나는, 죽지 못하면서 죽음을 꿈꾸는 내가 되어있었다.


당시 나에겐 '퇴사'라는 옵션은 없었다. 회사를 떠나면 밥벌이는 어떻게 할지, 카드 빚은 어째야 하는지, 이직은 될지 이런 고민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를 더 어렵게 했던 것은 '떠나는 나는 나약한 실패자'이고 '남은 저들은 성공한 사회인'이라는 프레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직하는 선배들이나 퇴직하는 선배들을 동경하면서 말이다. 퇴사하고서야 그 회사를 다니며 형성하게 된 그때의 썩어빠진 프레임을 부르는 명칭을 알게 되었다. "가스 라이팅"이라고 한다더라.


퇴사 직전에는 주말엔 침대 밑으로 내려오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파트장의 한 마디에 회사 화장실에서 분노와 억울함의 눈물이 터져 나오는 나를 보면서 홧김에 구직 앱의 지원 공고를 탐색했다. 즉흥적으로 재밌어 보이는 콘텐츠를 만드는 작은 스타트업에 지원했다. 그리고는 그곳에 면접을 보러 갔고 합격했다. 얼떨결에 일어난 상황들로 인해 '죽음'이 아닌 '이직'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통쾌하게 퇴사를 선포했다.


이직한 회사는 첫 회사보다 회사 이름이나 콘텐츠가 유명하진 않았지만, 첫 회사에서보다 모든 것이 나았다. 워라밸이 지켜지는 근무 환경과 배울 점이 많은 동료들과 소폭이지만 상승한 연봉으로 인해 눈 뜨기 싫은 하루에서 기대되는 하루로 바뀌어있었다. 이렇게 편하게 돈 벌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안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첫 회사에서 불안에 떨며 나를 억눌렀던 "여기 아니면 안 돼." 또는 "나가서 더 최악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오히려 나를 망가뜨리고 있던 고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최악'이라는 말은 이보다 더 최악이란 상황은 없다는 말이다. 지금이 최악이면 지금을 벗어나야 한다. 벗어난다는 게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더 적극적으로 내가 하루를 더 살아내기 위해 지금의 환경을 바꿔줘야 한다는 의미이다. 퇴사 직전에 영화 <이집트 왕자>를 즐겨 봤었다. 그 영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역에 울부짖으며 부르는 노래인 "Deliver us"가 나오면 눈가도 촉촉해지곤 했었다. 한동안 기도도 안 하던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는데 주일에 교회에 가서 하루빨리 이 고통에서 제발 나를 구원해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인해 고통으로 끝나버린 아무개의 삶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하루들을 살아가는 삶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집트 왕자> 뒷 이야기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그때 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에 광야로 들어간다. 그들은 광야에서 "이집트 시절이 더 좋았지.."라고 불평도 한다. 불평한 자들은 광야에서 죽었지만, 남은 자들은 광야 생활을 인내하며 성장하고 성숙하고 약속의 땅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다음 세대들은 인도하심에 따라 풍요로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살다 보면 이집트의 종살이 같은 시기도 있고, 광야의 황무지 시기도 있는 듯하다. 내 삶이 고난만 겪다가 멈출지언정 그 고난 중에서 성숙하며 가족과 동료에게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주고 성장하는 거름이 되어 준다면 그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다. 어쩌면 그러한 삶이야말로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에서 이루지 못할만큼 어렵지만 가장 의미있는 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 회사 때문에 죽고 싶다면, 나는 이 회사의 무엇 때문에 이곳을 붙들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붙들고 있는 그것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죽음을 택하고 싶을 만큼 힘들다면 차라리 그곳을 나오기로 결정해봤으면 좋겠다.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다른 희망은 찾아볼 여지가 있으니까. 


한 때는 죽지 못해 살았던 나였기에 그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을 슬픔과 무기력과 분노와 우울함 속에 있을 선배, 동료, 후배들을 너무나도 위로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열심히 성실하게 양심적으로 살아왔다면 반드시 그 가치를 아는 분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고귀한 그 가치를 지켜내시길 응원한다. 

나도 내 자리에서 오늘을, 내일을 이겨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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