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의 끝에 드디어 봄이 왔다.
이번 겨울은 나에겐 유난히도 길었다. 날도 추웠지만 마음도 참 추웠다. 나의 가을과 겨울은 슬픔과 분노를 삭이며 밤에서 밤으로만 이어지던 시간이었다. 내가 그렇게 지낼 때 내 지인들도 각자의 삶에서 이별과 사별을 마주하고 있었단다. 어쩌면 우리의 겨울은 오랜 날 오랜 밤을 매일 참아내는 시간이었나 보다. 우리는 그렇게 길고 긴 터널을 함께 걷고 있었다.
지난 몇 주는 봄이 왔나 싶어서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창문을 활짝 열면 금방 한기가 돌았다. 이리도 지독한 희망 고문이라니. 길었던 겨울만큼이나 다가오는 봄도 이렇게나 밀당을 하며 오지 않아 지쳐버렸었다. '과연 끝이 있을까. 봄은 올까.' 하고 출퇴근 길과 점심시간까지 하루에 세 번은 되뇌었다.
오늘은 모처럼 미세먼지 상태가 양호한 날이라 밖으로 나왔다. 방에서 바라본 창 밖은 여전히 흐렸지만, 공기는 맑고 비도 오지 않아서 나가볼 용기가 생겼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봄이 와 있었다. 언제쯤 인내의 끝이 오려나 했는데 드디어 봄이 눈앞에 보인다.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새싹의 기운이 담긴 듯한 흙내음이 묻어난다. 땅에는 푸른 풀이 올라오고, 산수유나무는 피어나고, 버드나무에도 새순이 오르고 있다. 내 방에만, 내 맘에만 더딘 봄이었나 보다. 사람도 많고 바람도 많은 산책로엔 생기가 한가득하다. 오래 기다린 만큼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땅에 내렸다.
올해에는 기획/개발 중인 제품도 출시할 수 있을까. 1년을 넘긴 개발 기간을 참아내면서, 퇴사하는 동료에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며, 남은 팀원들은 마지막 남은 최선을 끌어올려 마음을 모으고 있다. 우리의 인내의 끈은 서로가 서로를 묶고 이어주고 있다.
가끔 코로나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을 마주하지만, 의연하게 버텨내며 더욱 밀도 있는 인내를 경험하고 있다. 이 기다림의 끝에도 출시라는 봄이 오면 좋겠다. 지금이 끓어오르기 전 99도씨의 물이었으면 좋겠다. 해가 뜨기 전 가장 어두운 새벽이었으면 좋겠다. 정상에 오르기 전 마지막 깔딱 고개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매일을 성실하게 참아낸 시간들이 가치 있었음을 맛보고 싶다. 마치 오늘의 봄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