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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결 Jun 10. 2022

오늘 하루도 '끝까지' 파이팅!

도피하지 않고 아낌없이 살아본 한 주의 기록

'무리하면 내일 힘들 테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야지.'는 나도 모르던 내 일상의 모토였나 보다. 

퇴근 후 나와의 약속이 너무 소중한 내향형 인간인 나는 한 주의 약속 총량이 있는 편이었고, 하루의 말하기 총량이 있는 편이다. 그런데 또 나를 찾아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좋아서 약속을 취소하지도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 주의 체력을 분배하며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수준으로 한동안 살았었는데, 날이 좋아지니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도 약속도 많아져버리고 말았다. 내 일상을 깨는 그 고맙고도 버거운 스케줄은 즐거움과 걱정의 미묘한 경계 어딘가에서 어중간하게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한 내 생각과 태도는 이번 주를 보내며 천천히 바뀌고 있다. ISFP에겐 엄청났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일정을 소개한다.


월요일인 현충일은 날이 너무 좋았다. 12시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침대에 누워 한껏 에너지 충전을 했다. 창 밖 건물들 사이의 파아란 하늘과 그 하늘을 흐르는 하얀 구름들.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더러운 방충망을 통해 들어왔어도 그 상쾌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집순이에게는 침대가 최고라 침대에 누워 몇 시간을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이 햇살을 집에서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밖으로 나갔다.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가, 가는 길에 연락 온 자전거 친구와 급만남으로 반포 한강공원까지 갔다. 최고의 날씨, 집에서 쉬면서 넉넉하게 채운 체력, 반가운 친구와의 즐거운 대화, 그리고 쉬는 월요일. 모든 것이 충분하고 만족스럽고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시작된 화요일. 전날 자전거를 타고 늦게 집에 와서 피곤했지만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어서 빠른 퇴근을 위해 일찍 출근해야 했다.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서 부랴부랴 출근하고, 인파를 뚫고 퇴근해서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은 시간에 친구를 만났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밀린 얘기를 나누고 산책을 했다. "잘 사는 것",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사는 것이 부족함은 없지만 맞는지는 모르겠는 의문이라는 공통점으로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기분 좋은 15,000보의 산책을 마치고 다음 날 있을 재미를 위해 잠깐 옷 구경을 하러 쇼핑을 갔다가 구매는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구매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충동구매하지 않은 나 자신은 점점 더 좋아지는 귀갓길이었다. 

기다려온 수요일. 이 날은 회사 동료들과 퇴근 시간을 맞춰서 퇴근 후 오락실에 갔다가 닭갈비를 먹기로 한 날이었다. 이틀 연속 빠른 출근을 해야 했고, 화요일보다 더 빠른 시간에 출근해야 해서 마음이 조급했다. 결론적으로는 10분 정도 늦어버렸지만, 그래도 다들 시간을 맞춰서 퇴근하고 오락실로 향했다. 오락실에서 펌프 게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주변에 펌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서 펌프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펌프를 처음 해보고는 마음에 들었는지 재미를 붙인 회사 동료가 생겨서 새로운 펌프 친구와 내리 9곡을 신나게 밟았다. 회사에서 만나는 (세대를 뛰어넘는?) 펌프 친구라니! 어찌나 반갑던지. 그렇게 오락실에서 텐션을 한껏 올리고는 다 같이 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그리고 그간 돌보지 않았던 사내 상황에 대해서도 듣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나누며 고민을 함께 나눴다. 돌아가는 길엔 모르던 사정을 알아버려서 불편한 마음도 있었지만, 재미와 고뇌를 다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을 주셔서 감사했다. 그 감격으로 힘이 다시 차올라서 헬스까지 하고 집에 간 알찬 하루였다.

위클리 미팅이 있는 목요일. 목요일은 언제나 가장 고된 느낌이다. 특히 이번 목요일은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뜻밖의 야근을 하느라 저녁 약속을 취소하게 되었다. 지난 수요일까지의 활동량 때문에 한 주의 체력은 이미 다 써버린 상태라 온몸에 피곤이 가득한데 갑자기 내일 방문하겠다는 고객사의 요청에 시연 준비로 야근도 하게 되고... 하루 종일 긴장 상태로 보내서인지 이렇게 집에 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같이 야근한 동료들과 오락실 얘기를 하다가 다시 펌프를 하러 가게 됐다. 이번엔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였다. 2일 연속 펌프를 하니 무릎과 종아리는 한껏 지쳐있었지만 기분만큼은 고등학생 시절 모의고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즐기던 그때의 그 기분이었다. 인생 네 컷도 남겼으니 정말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고객사의 내방이 있는 대망의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들른다는 고객사 관계자분들은 예정보다 조금 늦으셨고,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와 주셨다. 회의실이 좁게 느껴질 정도였고,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공간에서 열기는 점점 차올랐다. 회의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지만, 어떻게든 끝나고 사후 공유와 대응 방안 회의를 하고 나니 오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이번 주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니 오후까지 버틸 힘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내 상태를 알아봐 준 동료들이 같이 오후 반차를 쓰자는 제안을 해줬고, 고맙게도(?) 서로 각자를 위해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같이 오후 반차를 써버렸다. 대낮의 퇴근만큼 행복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퇴근 후 같이 점심을 먹던 동료에게 오후 약속 일정을 공유하다가 같이 잠실에 쇼핑을 하러 가게 되었다. 그리고 쇼핑을 하러 내린 잠실역에서 우리는 "롯데월드"라는 안내판의 글씨에 홀려서 뜻밖의 롯데월드 행을 선택했다.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은 놀이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충전되기 시작했다. 30여분 넘게 줄을 서서 3분 남짓한 쾌락을 느꼈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차고 넘치는 행복함이었다. 그 행복에는 지난 시절에 경험한 놀이공원의 추억과, 그 시절의 즐거움까지 같이 묻어있었다. 

계획하고 예상한 것들이 그대로 된 것은 없는 한 주였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 때문에 평소 체력 이상으로 매일 하루를 살아내야 했지만 재고 따지며 통제해온 하루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이 있었다. 밑그림을 그려두고 그 위를 색칠하는 하루가 그동안의 일상이었다면, 이번 한 주는 하나의 낙서에서 시작된 그림을 이어 그리다 보니 유쾌한 장면이 펼쳐진듯한 느낌이었다. '오늘'에 집중하는 것, 오늘 만나는 사람들과 오늘 일어나는 일들에 집중해서 지덕체를 다 쏟아보는 것도 꽤나 재밌는 것이었다. 환경에 의해서든, 내가 원해서든 그 하루를 온 힘을 다해 끝까지 살 아내 보니 하루하루가 즐거운 에피소드로 가득했다. 계획하지 않아서, 새롭고 자극적이어서 즐거웠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돌아보니 그것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새로움이기보다 끝까지 살아내서 소중한 하루였던 것 같다. 피곤해도 친구와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아서 나눈 대화들, 집에 가고 싶지만 밖에 나와서 마주한 좋은 날씨들. 혼자 있지 않기로 결심했기에 마주한 장소와 함께한 좋은 사람들. 이번 주의 열매는 "끝까지"이다. 끝까지 살아보고,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인내해보기. 그 모든 끝에는 기쁨이 함께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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