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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놀자 Nov 22. 2020

그러니까 애초에

그러니까 애초에 테두리가 없는 접시를 샀으면 됐을 일이다. 

그랬다면 테두리 없는 접시를 살까 말까, 만약 산다면 하나는 좀 부족한 것 같고 두 개는.. 그럼 같은 크기의 접시가 세 개나 있는 건데 돈이 좀 아깝지 않을까, 그냥 사버릴까, 산다면 지금 살까, 월급날까지 기다렸다 살까, 어차피 얼마 하지도 않는데.. 따위의 고민을 하다가 이 시간까지 잠 못 자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혼자 사는 집에 접시 개수는 사이즈 별로 하나씩만 있으면 충분하지만, 갑자기 손님이 방문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럼 적어도 두 개는 필요하고, 그럼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위해) 미리 하나 사놔야 하고... 


물론 같은 사이즈의 접시가 필요한 거라면 이참에 테두리가 있는 걸 하나 더 사도 되지만, 막상 사고 나니 살 땐 이뻤던 짙은 갈색의 무늬가 왠지 유치해 보이는 것 같고, 리뷰를 보니 테두리가 없는 흰색 접시가 더 이뻐 보이는 것 같고, 그러니 테두리가 없는 접시를 살까 말까, 만약 산다면 하나는 좀 부족한 것 같고 두 개는.. 그럼 같은 크기의 접시가...... 


그릇 좀 많으면 어때, 결혼할 때 혼수로 가져가면 되지. 

그런데 지금 내가 결혼이 하고 싶은가? 어차피 집 값 때문에 하지도 못하는데? 만약 집 문제가 아니라면 할 것인가? 그건 또 아닌데? 그럼 지금 미리 사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그건 또 그러네. 



원래 계획이었다면 오전에 탈 비행기 때문에 깨어있지도 못했을 텐데.

눈물을 머금고 취소한 비행기 티겟과 취소 수수료. 흐앙 내 돈. 접시 가격이 딱 그만큼 이었는데. 우씨. 

잡았던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집에만 있을 거니까 밥이라도, 커피라도 이쁜 곳에 담아 먹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그래. 사는 거야. 

자고 일어 나서 쿨하게 결제하는 거야. 

월급날까지 기다리는 일 같은 건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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