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살리아 Jan 29. 2018

#25. 카르멘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페라를 좋아하시나 봐요?”


“네?”


“지난주에도 이 공연을 보셨죠?”


블라디보스톡의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 카르멘 공연의 3막이 방금 끝이 났다. 로이는 3층 로비의 난간에 기대서서 1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 한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큰 키에 타이트한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굵은 웨이브에 금발의 긴 머리는 왼쪽으로 가르마를 타, 왼쪽 귀로 넘겨져 있다. 볼륨 있는 몸매에 긴 다리가 짧은 치아래로 곧게 뻗어 있고, 화려한 메이크업과는 상반되게 검은색 하이힐의 디자인은 심플했다.


“참 매력적이죠?”


“네. 그러네요.”


여자의 물음에 로이가 그녀를 바라보며,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열정적인 집시 여인, 카르멘 말이에요. 호세가 반할만한 매력적인 여자 같아요. 결국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의 여주인공이지만, 야성적인 아름다움. 함부로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녀가 가졌던 거 같아요.”


“야성적인 아름다움이라……”


“마지막에 호세가 카르멘에게 에스카밀로를 정말 사랑하느냐고 묻잖아요. 매정하게 그를 죽도록 사랑한다고 소리치는 그녀의 마음이, 진심이었을까요?”


“글쎄요. 그녀의 진심이 무엇이었든 간에, 결국 그녀가 선택한 길이겠지요.”


“그래요. 그녀는 자신의 죽음도 선택했죠.”


“Envain pour eviter”

(도망쳐 봐야 아무 소용없지)


로이는 3막에서 카르멘이 자신의 종말을 예고하며 부르는 아리아의 곡명을 내뱉었다.


“맞아요.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들이 복선처럼 몇 차례 나오. 그녀의 죽음을 예고했던 트럼프 카드, 스페이드 에이스! 어쩌면 카르멘은 자신의 죽음 또한 미리 예상하고 있었을 거예요.”


“…”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그건……”


로이가 입을 떼려던 순간, 인터미션이 끝나고 곧 4막이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로비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다시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움직임에 여자가 먼저 난간에 기댄 몸을 돌려 공연장 입구로 향했다. 로이도 그녀를 따라 몸을 세웠다. 앞서 걷던 여자가 뒤따르던 로이를 향해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결과를 알더라도 마지막 앤딩은 즐겨야죠.”


1부 끝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트래블러: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지금 몰입했다면, 구독하세요!


처음부터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24. 해변의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