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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사과 Jul 24. 2020

입체파 조각가가 머무른 작은 아틀리에, 박물관이 되다.

세상의 모든 미술관 - 프랑스 파리, 자드킨 미술관


유난히 햇살이 쏟아지던 지난 해 6월의 어느 날, 산책하듯 카메라를 메고 유유자적 하다 평소 지나가기만 하였던 자드킨 미술관에 가보았다. 뤽상부르 정원 근처, 그 옛날의 헤밍웨이, 거트루트 스테인등 파리를 사랑했던 외국인 예술가들이 많이 살던 Assas 길인데 아마도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알아보려 이런저런 답사를 하던 때 였던 것 같다. 


Assas길의 한 고서점



이 동네는 고서적상들이 참 많은데 생미셸 근처나 뤽상부르 공원 왼쪽 아랫길인 오데옹가의 헌책방보다는 손에 잡기 무색할 정도로 비싸보이는 퀄리티 높은 고서적들, 그러니까 박물관에 진열해 놓은 것 같은 수준의 고 서적과 골동품들을 전시(?.. 판매라고 쓰고 전시라고 부른다) 하는 상점들이 여럿 된다. 


그 덕에 간혹 시간이 남으면 골목골목 구경을 하게 되는데 그 거리의 중간에 위치한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화가, 오십 자드킨 Ossip Zadkine (1890-1967) 이 1928년에서 67년까지 실제로 40년 가까이 아내와 함께 살았고, 또 작업했던 지금의 자드킨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검정 철문을 열고 남의 집을 들어가듯 긴 통로를 들어가면 실로 자그마한 입구를 맞이하게 된다. 자신의 아내였던, 화가 발렌틴 엔리에트 프락스 Valentine Henriette Prax 에 의해 시에 기증된 그의 아틀리에는 현재 자드킨의 작품이 가득한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에우르디케와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덕에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 나는 나의 에우르디케를 잃었네 J'ai perdu mon Eurydice도 애정하게 되었다. 현악기의 음색을 좋아해서 인지 신화속에서 수금을 켜는 인물을 좋아한다. 음 그러니까 오르페나 사포(spaho)와 관련한 예술작품은 대부분 홀리듯 감상하게 되는 편이다. (그런데, 왜 리라(수금)을 켜는 신화속 인물들은 모두 비극으로 끝을 맺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런 비극의 주인공들을 좋아하는 것은 역시 장조 보다는 단조를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과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원에 들어가자마자 눈길을 끌었던 자드킨의 오르페 (Orphée)


천상을 울리는 수금 연주를 선보였던 오르페, 자신의 하나뿐인 사랑, 아내 에우르디케를 죽음으로 앗아간 지옥의 신 하데스에게 용감히 찾아가 최상의 선율을 선사하고 아내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오르페의 연주에 감동한 하데스는 지하에서 아내와 빠져나가는 동안 절대로 뒤를 돌아 따라오는 아내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는 조건으로 두 부부의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을 승낙한다. 길고 험난한 지옥의 길, 아내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오르페는 지옥길 끝에 다달아 지상의 빛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아내를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뒤를 돌아 자신의 아내를 확인하던 순간, 손끝에서 에우르디케는 연기로 사라지고 만다. 긴 역경 끝, 이제 희망을 눈 앞에 두었는데 단 한순간의 마음으로 눈에 한번 담고 이내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린 그녀에 대한 기억을 고통이 아닌 견디움으로 노래한 아리아.  


이루어 지지 못한 절박한 마음의 승화 같은 모습으로 언제고 오르페는 세상 어느 박물관 에서나 눈길을 끄는 소재 중 하나였다. 그런 오르페가 자드킨 미술관에 발을 들이자마자 리라(수금)를 들고 나를 맞이 하였던 것.


https://www.youtube.com/watch?v=sNEUdGZutGw


오십 자드킨 (Ossip Zadkine Russsia, 1888-1967)


러시아 - 영국 - 프랑스 - 미국, 뉴욕 찍고 다시, 프랑스


러시아 출생의 조각가 오십 자드킨은 유년기 자신이 사는 러시아의 작은 마을 스몰렌스크의 모든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신학중에서도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치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가 곧 삼촌이 있는 영국에서 회화를 공부했고, 이 시기 영국 박물관을 드나들며 갖은 습작을 남겼다. 그리고 곧 아버지의 권유로 1910년 가을, 파리에 입성. 조각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비록 파리 미술대학을 6개월만에 뛰쳐 나왔고, 곧 세계대전도 터졌지만 피카소, 브랑쿠시, 모딜리아니등과 절친하게 지내며 자신의 작품의 기틀을 다져갔고, 더불어 미국 작가 헨리 밀러 등과도 교류했다. (훗날 헨리 밀러의 소설 북회귀선에도 자드킨이 큰 영향을 끼친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칭 타칭 당시 유행하던 큐비즘 조각가로 불리우며 다양한 활동을 한 자드킨은 전쟁등으로 프랑스에서 추방 당해 미국 뉴욕 등지에서 아틀리에를 제공 받으며 전시를 하기도 하였지만 곧 프랑스로 돌아와 남은 여생을 살다 갔다. 


출처: 좌, 브리테니커 사전- 자드킨 / 우, 자드킨박물관-발렌틴


입체파 조각가 - 좌측면과 정면 그리고 우측면에서 보이는 단면을 엮어 입체감을 만들어 낸다. 


당시 모딜리아니와 피카소가 깊이 빠져있던 아프리카 마스크등에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큐비즘을 완성해 냈는데 그런 조각들이 정원과 아파트, 그리고 작업실 곳곳에 녹아들듯 전시 되어있다. 


모던 아티스트라면 다 라 호통드(La rotonde) 로 가야한다고 한것처럼 모두 다 몽파르나스 근처의 한 카페, 호통드에 모여들던 그때. 이 자드킨이라는 러시아 사내도 아폴리네르, 후지타, 모딜리아니, 피카소등과 아름다운 시대의(La belle Epoque) 파리에서 예술적 감정을 교류하며 솟구쳐 오르던 영감을 발산하는 한 시대를 마음껏 누리던  조각가로 열심히도 활동했던 것이다. 



왼쪽 오른쪽 정면, 각기 다른 여러가지 면들이 모여 하나의 입체적 얼굴이 완성된다.


자드킨의 아뜰리에 - 햇살이 조심스럽게 내려앉은 곳곳에 자리잡은 조각과 그림, 그 공간의 미학


단지 잘 짜여진 것이 아니라 계획된 위치에 덧댄 분위기로 매력을 끄는 박물관을 보면, 기분이 오묘하다. 지나간 시간을 현재에 묶어 두면서, 과거를 아련하게 그리고 관람자로 하여금 미래에 현재를 더욱 진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공간 자체의 아름다움에 깊이 감탄했다. 



창가에 비치우는 햇살과 나뭇잎에 바람 쓸리는 소리, 조용하고 묵직한 조각과 그 조각들이 오랜세월 지키고 있었던 자리들이 마음을 아름답게 만드는 곳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폐관중이지만 이 역경이 지나가면 꼭 한번 방문해 보기를 추천드리는 곳



더불어 홈페이지도 들러보길 추천한다. www.zadkine.paris.kr


작품을 만든 소재별로 전시된 조각을 나누어 놓았고 오십 자드킨의 연대기, 그리고  그의 아내인 발렌틴의 연대기와 가상 박물관 까지 짜임새 있고 알차게 준비해 둔 사이트이다. 


진정한 파리지앙을 꿈꾼다면, 꼭 루브르 박물관만 고집하지 말고 나만 알아갈 수 있는 특별하고 소박한 공간도 가끔은 누려보자. 



부디 빛 좋은 여름날의 파리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길.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는 내내 그 날의 내 일상이 그리웠다. 


**자드킨 파리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를 엄청 많이 참고한, 올 봄에 작성한 포스트를 브런치에 올려본다. 그동안 다닌 파리의 작은 미술관들과, 세계 곳곳에 숨겨진 미술관 여행기... 차근차근 올려보려고 한다. 이렇게 허망한 2020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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