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도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몇 년 전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던 회사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였다. 회사는 매드포갈릭이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외식기업이었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스테이크하우스 오픈이었다. 과연 어떤 스토리텔링으로 어떤 브랜드를 탄생시킬 수 있을까.
교과서에서 배운 데로 하면 브랜딩이란 최소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하고 시장에서의 타깃을 정한 후 그에 맞는 브랜드 콘셉트를 잡은 후 메뉴, 디자인, 인테리어 등 각 부서로 오더가 떨어진다. 그러면 각 부서에서는 이 브랜드가 문제없이 론칭하여 매장을 오픈할 수 있도록 각자의 최선을 다하게 된다. 하지만 실무 현장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위에서 말한 최소한의 필수 의사결정의 단계가 필요한데 그 단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역시나 이번 스테이크하우스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메뉴는 스테이크, 패밀리 레스토랑보다 고급스러운 코스 메뉴가 가능한 스테이크하우스의 카테고리가 정해졌다. 스테이크하우스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시장조사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졌고 메뉴 구성, 메뉴 가격, 타깃 설정 등 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하여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잡은 콘셉트와 무드는 ‘세련’과 ‘모던’이었다. 프라임 등급의 스테이크만 제공되는 브랜드의 공간으로서 현대적인 감각의 고급스러운 감성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시간이 촉박하여 공간설계 및 공간 디자인이 먼저 진행이 되었지만 브랜드를 연구하고 고민하면 할수록 우리 브랜드만의 차별점이 없었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룩앤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테리어 자재와 소품들도 고급스러워야 하고 전체적인 브랜드 콘셉트를 하이앤드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 upper dining으로 포지셔닝하여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포지셔닝되어있는 매드포갈릭과 차별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브랜딩 진행 중 목표 매출액을 위해서는 너무 높은 가격의 책정보다는 대중성 있는 전략이 맞다고 판단하였고 브랜드의 콘셉트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Back to the basic!
생각이 안 날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했던가.
티본스테이크의 태생을 다시 한번 짚어보았다.
우리나라 스테이크하우스가 크게 2가지 부류임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는 뉴욕 스테이크하우스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이탈리안 비스테까였다. 뉴욕 스테이크는 저가형이나 캐주얼 레스토랑들이 시중에 너무 많이 생겼기 때문에 그들과 경쟁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탈리안 스테이크 쪽을 연구해볼까!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는 토스카나(Toscana) 주 피렌체 지방의 전통요리로 이탈리아식 티본스테이크이다.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는 키아니나 종(Chianina breed) 소고기만을 사용해 만든다. 키아니나 종(Chianina breed) 소고기는 육즙이 풍부하고 육질은 버터처럼 녹아내리는데,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에는 그 맛이 잘 반영되어 있다. 고기가 크고 두툼해 2~3명이 함께 나눠 먹는 것이 일반적이며, 레어(rare)로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 (세계 음식명 백과, 김소영, 장은아)
‘이탈리아 피렌체식 티본스테이크’가 바로 우리 브랜드의 차별적 소구 포인트이자, 브랜드 정체성이 되었다. ‘이탈리아식’이 매드포갈릭의 그것과 일맥 하기에 브랜드 탄생의 정당성과 메뉴 개발 부분도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또한 지나치게 대중화되어 가치 절하되지 않고 차별화된 포지셔닝으로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다음은 이 스테이크 브랜드를 어떤 비주얼 콘셉트로 어떻게 고객에게 선보일 것인가. 우리의 스테이크가 ‘이탈리아식’이 된 이상 더 이상 고급, 세련, 시크함보다는 클래식, 따뜻함, 우아함이 비주얼 콘셉트이자 룩앤필이 되어야 했다. 이미 매장 외부는 블랙 스톤 타일로 작업이 진행 중에 있었기에 브랜드에 ‘contemporary(동시대의, 현대의)’가 추가되었다. 시크한 외관을 들어오면 내부에는 1800년대 피렌체의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 디자인을 전면 수정하였다.
1800년대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이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시절 선망받던 메디치 가문이 200년 동안 모은 2,500여 점의 방대한 예술작품이 소장된 곳이다. 보티첼리, 시모네타 베스푸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산치오 라파엘로, 조르조 바사리 등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유명한 작가들의 유명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는 곳이다.
바로 이 우피치 미술관을 비주얼 공간 콘셉트로 하여 매장 내부의 분위기를 마치 우피치 미술관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으로 기획하였다. 우피치 미술관의 내부처럼 과감하게 붉은 벽면으로 채우고 우피치 미술관의 작품을 그림, DID 패널로 채워서 마치 갤러리에 온 것처럼 연출하였다.
BI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형상화 한 심벌마크와 중세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연상하는 세리프 타입의 워드마크를 조화시켜서 만들었다. 또한 네이밍의 M은 Mad for Garlic, Marvellous, Marbling 등 브랜드의 철학과 이야기를 M으로 집약하였다.
스테이크의 등급도 미국산 프라임 등급 소고기만을 엄선하여(정통 이탈리안 스테이크인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는 키아니나 종으로 조리해야 하는데 이는 현재 국내에 수입이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 피렌체 정통 티본스테이크에서 영감을 얻어서 엠. 스테이크 하우스만의 노하우(매드포갈릭 등 20년 이상의 외식 브랜드 운영 노하우)로 조리하였다. 또한 우피치 미술관의 예술적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삼성 ‘더프레임’과 콜라보하여 그림 액자와 함께 고객들에게 선보여지고 있다.) 인테리어 공간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다양한 작품과 스테이크와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써 M.STEAK HOUSE가 탄생하였다.
매장에 들어서면 마치 갤러리에 온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섹션을 나누어서 각 벽마다 어떤 작품이 걸려있고 ‘더프레임’에 보이는 그림들은 어떤 작품들인지 리플릿을 통해 작품 설명과 함께 즐길 수 있다.
또한 메뉴판은 갤러리의 콘셉트와 동일하게 액자 프레임에 넣어진 상태로 고객에게 제공된다. 메뉴판을 받은 고객들은 액자 메뉴판의 낯섦에 또 한 번 놀라곤 한다.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메뉴가 나오기 전, 서버가 나이프 세트를 가져온다. ‘라귀올’이라는 200년 전통의 프랑스 명품 커트러리 브랜드로 완벽한 상태로 커팅하여 스테이크를 최상의 상태로 맛볼 수 있는 스테이크 나이프이다. 고객은 원하는 라귀올 라이프를 고르면 된다. 아마도 일반 나이프랑은 전혀 다른 썰림 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올리브유가 스토리텔링과 함께 제공된다. 이탈리아에서 연간 5천 병만 생산되는 엑스트라 버진 오일로 고객에게 직접 올리브유 뒷면의 리미티드 넘버를 보여주고, 직접 스테이크에 뿌려준다. 이탈리아식 스테이크는 올리브유를 뿌려먹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풍미가 배가 되는 기분이다.
이쯤 되면 엠. 스테이크하우스 브랜드는 브랜딩 포인트이자 스토리텔링 덩어리이다. 매장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인테리어에서 마치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감성을 느낄 수 있고, 액자 모양의 메뉴판에서 이곳이 갤러리 콘셉트임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해 준다. 브랜드의 철학과 역사를 가진 브랜드인 라귀올 나이프와 이탈리아식 스테이크를 즐기는 차별화 포인트로써의 리미티드 에디션인 올리브 오일을 서비스받는다.
이곳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부터 소모품 하나까지도 촘촘하게 브랜드의 스토리를 실었다. 글로 설명하자니 그 내용이 길고 많아 보이지만, 식사를 위해 방문한 고객은 매장 입구에서부터 시각적인 즐거움과 메뉴판을 통해 메뉴를 주문하고 메뉴를 제공받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메뉴의 맛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깊은 철학과 가치를 온전히 느끼고 서비스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