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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Sep 25. 2022

1. 감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슬아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학교에 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침을 삼킬 때마다 따끔거리는 통증도 잊어버릴 만큼 마음이 무겁다. 학교로 향하는 슬아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진짜 학교에 가기 싫다...’ 

  슬아는 감기 때문에 나흘 연속 결석을 했다. 학교에 가면 밀린 과제와 프린트물이 슬아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것이다. 꼰대 담임선생님은 결석한 아이들에게 수업 때 진행했던 각종 과제물과 퀴즈 문제, 보충 학습지까지 어마어마한 양의 프린트물을 안겨 주신다. 쉰 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한고 선생님은 결석한 아이들에게 귀가 따갑게 잔소리를 하곤 하신다. 슬아도 예외는 아닐터였다.

  슬아는 6학년이 되고부터 학교 가는 길이 더는 신나지 않았다. 겨울방학 이후 모든 게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잔잔한 호수 위 돛단배 같던 슬아의 인생은 풍랑을 만나 산산조각 난 난파선처럼 처참하게 변했다. 시작은 윤정이의 이민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단짝이던 윤정이가 5학년을 마치고 갑작스레 캐나다로 떠난 것이다.  

  슬아와 윤정이는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매일 아침 정문에서 만나 함께 등교했다. 수시로 전화를 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주고받았고, 둘 중 한 사람에게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함께 똘똘 뭉쳐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주말이면 놀이터에서 만나 신나게 뛰어놀았고 출출해지면 단골 편의점으로 뛰어가 컵라면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둘도 없는 단짝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슬아와 윤정이는 우정 반지를 나눠 끼었고 똑같은 돌고래 인형을 가방에 달고 다녔다.   

  슬아에게 윤정이는 든든한 백이자 믿음직한 버팀목이기도 했다. 당차고 넉살 좋고 윤정이는 낯을 가리는 슬아와 달리 어디서나 빠르게 적응했다. 사교성도 좋아 처음 본 아이들과도 쉽게 친해졌다. 슬아가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주춤거리고 있으면 윤정이는 슬아가 자연스럽게 무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윤정이의 활약으로 슬아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슬아 역시 처음 본 친구들과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을 때 슬아는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언가 신나고 짜릿한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떡국을 배부르게 먹고 슬아는 일기장에 새로운 목표를 적어 넣었다. 숫기 없는 슬아였지만 친구들처럼 K팝 댄스 수업에 지원해 보기로, 학급 임원 선거에 도전해 보기로 버킷 리스트를 적듯 ‘졸업 전 꼭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기분 좋은 설렘은 며칠간 계속됐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윤정이와 같은 반이 될지도 몰라!’ 

  슬아는 진짜 윤정이와 같은 반이 되기라도 한 듯 평소 싫어하던 영어학원에 갈 때도 휘파람을 불고 다녔다. 그러나 현실은 슬아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새로운 반이 발표될 즈음, 윤정이가 캐나다로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민 준비로 부모님과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던 윤정이는 간다는 인사도 없이 부모님과 함께 훌쩍 출국해 버렸다. 한 달 넘게 윤정이의 스마트폰은 꺼져있었고 슬아의 메일에도 답장이 없었다. 슬아는 영혼의 반쪽을 잃어버린 심정이었다.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을 거라고, 슬아는 밤마다 울며 잠이 들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들어선 6학년 교실은 더 최악이었다. 그간 슬아가 꺼리던 친구들을 누군가 작정하고 모아 놓기라도 한 듯, 함께 있으면 불편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교실 곳곳에서 포착됐다. 슬아는 순간 현기증이 났다. 이게 꿈이라면 당장이라도 깨어나고 싶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아는 심한 감기를 앓았다. 그렇게 나흘간 슬아는 몸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끙끙 앓았다. 

  “어려서도 감기 한 번 안 걸리더니. 이게 무슨 일이야. 슬아야! 눈 좀 떠봐!”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슬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엄마, 진짜 아픈 덴 몸이 아니라 마음이야. 나 정말 마음이 너무 아파.’

  슬아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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