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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Aug 12. 2018

포르투갈 여행기(4)

#4. 각양각색. 신트라, 호카곶 그리고 파로까지

2018.5.22~27 포르투갈 포르토, 리스본, 파로 여행기




 리스본에서의 세 번째 날. 오늘은 리스본 근교의 신트라로 갑니다. 24시간 교통권을 사둔 지라, 만료시간이 되기 전에 지하철 카드를 찍었습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시간을 확인하고는 바로 나와서 역 아래에 있는 약국에 들러 베드버그용 연고를 샀습니다. 출발 시간이 다되어 기차 문은 닫혔고 기차가 움직이자마자 아코디언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게 이 기차 안의 풍경과 참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생각에 제가 이어폰을 끼고 듣던 노래를 끄고는 연주를 끝날 때까지 계속 들었습니다. 40여분을 달려 신트라에 도착. 페냐 성 입장까지는 줄이 너무 길어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매표소의 친절하고 매력적인 포르튀기 청년을 보며. 생각해보니 저에게 ‘포르투갈’은 2002년 월드컵 때의 이미지가 전부였구나 싶습니다. 박지성의 골, 피구의 절규. 우리가 너네를 눌렀지롱! 고소해하던 기억만 남아있는데. 그런 포르투갈로 여행을 올 줄이야.    

 

@ 신트라로 가는 기차 안
@ 페냐성이 보입니다


 축구, 그리고 항구도시라 무척 사내답고 건장한 남성성이 그려지는 분위기일 거라 예상했는데, 리스본은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느낌이 감도는 것 같습니다. 한참을 올라 다다른 신트라 성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궁전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여 나온 삐뚤빼뚤한 색연필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양새와 색깔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색깔로 궁전을 칠했을까? 아주 탁월했다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당시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뙈약볕이 쬐더라도 이 궁 안에 있으면 가히 선선해지겠구나 싶었습니다. 성 구경을 마치고는 카페테리아에 앉아 커피 한잔과 어제 사둔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오랜만에 친구 하나와 전화를 하는데, 문득 친구도 저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싶어 져 조금 우울해졌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점점 고립되려 하는 걸까 고민에 잠겨 카스카이스를 가는 버스를 탔는데, 막상 정류장에 내리니 갑자기 그 자리에 얼어붙어 정류장에 한참 앉아 있다 겨우 정신을 차려 호카곶으로 가는 버스를 다시 탈 수 있었습니다.


@ 기대 이상으로 예뻤던 호까곶
@ 다들 그저 곶을 바라보고 있지요

     

 그렇게 도착한 호카곶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빨간 탑이 파란 하늘과 대조되어 더욱 색채를 발하고, 곶은 고요했습니다. 파도가 잘게 부서지는 바다보다는 물결이 그저 잘랑거리는 곶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제주도 함덕에서 새벽까지 한참이나 바라봤던 곶이 떠올랐습니다. 다들 그저 앉아서 퍼런 곶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가족들이 앉아있었는데, 엄마와 아이 둘이 Color Hunting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Pink!”하고 외치면 아이 둘은 “저기 저 할머니가 두른 스카프!” 시야에 보이는 핑크색을 엄마에게 치열하게 알려주고 있었지요. 여자아이가 누나 같았는데 남동생에게 나 이~만큼 찾았다고 뽐내는 모양새가 무진장 귀여웠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다시 호시우 역으로 돌아갑니다. 약 8시쯤에야 드디어 레스토랑에 입성. 어제 만났던 언니가 추천해준 생선집이었는데 이렇게 리스본에서 집밥을 만나다니. 참기름과 소금 간이 적절히 들어간 밥과 생선구이. 바로 제가 환장하는 맛이지요. 화이트 와인을 함께 주문했는데 잔이 너무 커서, 아 이 아저씨가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나 싶었는데 그 큰 잔이 고작 €1.50였다는 사실은 저로 하여금 리스본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 여행 다니면서 먹었던 것 중 가장 맛있었던 생선구이
@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밤
@ 용감한 고양이


 어제 야경을 봤던 곳에 다시 천천히 올라와 조용히 머무르며 이미 지고 난 해의 핑크빛 잔해들을 관망했습니다. 예쁘다. 등불이 하나씩 켜져 어두우면서도 밝음이 공존하는 그 시간대는 퍽 고즈넉해서인지 인내심을 향상시켜주는 듯합니다. 몇 시간이고 여기에 앉아있어도 좋겠다. 그래도 너무 늦기 전에 호스텔로 돌아왔습니다. 샤워를 하고 일기를 쓰고 있는데 술에 약간 취한 듯한 Destiny가 들어와서 말을 겁니다. 그는 인턴으로 리스본에 왔는데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해 호스텔에 머물고 있는 중이라 합니다. 어린 시절 스페인으로 이민을 왔고, 본인은 제 3세계의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며, 나중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서 그런 이들을 돕고 싶다는, 아주 거창하고 구체적인 꿈을, 매우 낯선 타지인인 저에게, 낱낱이도 고백해주었습니다. 저희는 잠시 동안 동지가 되어 각자의 꿈을 응원해주고 잠이 들고, 다음 날 다시 이방인으로서 작별하고 호스텔을 떠났습니다.     


@ 파로 비치
@ 파로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Faro로 가는 버스. 몇 시간 뒤에 내려서는 버스가 많이 없어 바닷가로 가는 택시를 탔습니다. 호스텔에 간판이 붙어있지 않아 구글 지도를 켰음에도 30분 넘게 뺑뺑 돌다가 겨우 입성. 짐을 다 두고, 베드버그 때문에 옷가지나 가방까지 숙소에 세탁을 맡겨놓고 바닷가로 나섰습니다. 조금 답답했던 심정들을 탁 트인 바닷가에 여과 없이 뱉어내고 아주 낮은 수평선으로 저물어가는 태양을 지켜봤습니다. 동시에 이영훈의 ‘기억하는지’를 듣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그런 건 아무런 상관없이 보낼 건 보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석양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무언가 중대한 것을 결정한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아주 일찍 잠에서 깨서는 호스텔 마당에 앉아서 조용한 호수를 넉넉히 감상했습니다. BGM은 강아솔의 ‘아름다웠지, 우리’ 바람이나 날아가는 새들의 속도나, 마치 딱 이 노래의 템포에 맞춘 듯이. 평화롭다. 그 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 파로에서 지던 해
@ 그리고 아침은 찾아왔습니다
@ 베드버그 탓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파로, 안녕


 파로, 특히 숙소 앞에서는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는데 그와 동시에 저도 집에 가고 싶은, 여행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원하지 않았던 것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버그 때문에 불안해진 탓일 겁니다) 갑자기 비행기 시간을 변경하게 되어 부랴부랴 짐을 챙기기 시작했고, 호스텔 카운터에 맡겨둔 빨랫감을 달라고 했더니 빨래를 시티센터 빨래방에 맡겨놔서 오늘 줄 수가 없다는 날벼락이 돌아왔습니다. 나의 모든 유럽여행을 함께 해준 백팩이여. 모로코에서 뜯어졌어도 잘 꿰매어 입고 다니던 나의 빨간 원피스여. 내가 아끼던 스트라이프 티. 그러나 별 수 있나. 이미 비행기는 변경되었고 남은 시간도 얼마 없었기에 그렇게 다 버리고 출발해야만 했습니다. 여행에는 언제나 이렇게 돌발상황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항까지 택시를 타려 했는데 도무지 잡히지가 않아 걸어가려 마음을 먹었더니 저 멀리 셔틀버스가 보입니다. 10분 정도 뒤에 공항에 도착. 무사귀환과 베드버그의 박멸을 기원하며 그렇게 더블린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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