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오랜 벗에게, 다- 고맙다. 인터라켄에서
2018.7.11~14 스위스 루체른, 인터라켄 여행기
최대한 사람이 붐비지 않을 때 산에 오르고 싶어 아침 6시에 알람을 맞춰두었는데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어 잠결에 30분 뒤에 일어나자고 친구와 협의 완료. 다행히 버스 첫 차가 있어 생각보다 일찍 역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융프라우행 기차에 탑승. 계획을 짤 때는 융프라우 패스니 스위스 패스니부터 시작하여 엄청난 환승 미로에 애먹었는데, 막상 환승은 그저 내려서 사람들을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 정도의 환승 끝에 융프라우에 도달. 눈에 뒤덮인 산은 정말 높고도 거대했습니다. 살짝 추워 겉옷을 더 가져와야 했나 후회감과 함께 허기가 올라왔습니다. 컵라면을 워낙 많이 가져온 탓에 융프라우까지 기껏 들고 왔건만. 뜨거운 물을 받으려면 8프랑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러니 그냥 여기서 사 드시길, 혹은 융프라우 VIP 패스권으로 다른 것 할인받지 말고 컵라면을 드시길 권유합니다) 하지만 이미 뚜껑을 뜯은 뒤라 선택권은 없었지요. 야박한 것들. 그래도 추운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먹는 컵라면 맛은 역시나 일품이었습니다.
다시 열차를 타고 그린델발트로. 중간 지점에서 환승을 해야 해서 내렸는데 융프라우보다도 아름다운 경치에 일단 맥주와 소시지를 샀습니다. 파라솔 아래 앉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과 하얀 산, 그 중간을 가로지르는 빨간 열차를 바라보며 그림보다 더 그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엄마가 "다른 데는 몰라도 스위스는 정말 가보고 싶더라." 흘렸던 그 말들도 생각이 나고. 친구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정말 성공해서 두 가족 같이 스위스로 여행 올까?' 하는 허황될지도 모르는,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아주 열심히 설계한 우리의 미래를 꿈꿔보았습니다. 엄마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자원은 점점 가속화되며 소진되고 있는데, 돈이라는 자원이라도 반비례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툴툴 괜한 심술도 부려보고. 일단 오늘은 제일 잘 나온 사진들을 가족에게 보내는 것으로, 그리고 융프라우가 그려진 예쁜 나무 엽서를 집으로 부치는 것으로 늦지 않게 당신들을 이 곳에 데려오겠다는 가계약을 걸어두었습니다.
그린델발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연신 감탄사만 나왔습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난 탓에, 그리고 추운 곳에 머문 탓에 저희는 기차 안에서 기절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소리가 들려 겨우겨우 친구를 깨워 하차. 그린델발트는 무더웠습니다. 이번엔 반대로 예쁘게 차려입고 올 걸 그랬나, 겉옷을 들고 온 것을 후회하며 열심히 케이블카 탑승지를 찾아 헤맸습니다. 케이블카는 생각보다 더 높이, 그리고 꽤나 오랫동안 떠 있었습니다. 한참을 간 끝에 피르스트에서 내려 글라이딩을 탔습니다. 독수리 오 형제처럼 네 명이 벌서는 자세로 매달려 역방향으로 높은 산까지 아주 빠르게 날아갔는데, 정말 공포스러웠습니다. 그나마 내려올 때는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스릴이라 다행이었습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파란 하늘과 대조되는 회색 산 그리고 하얀 구름을 눈에 가득 담은 다음에야 다시 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동역에 도착하니 피곤함이 몰아칩니다. 그래도 감자칩, 맥주, 바비큐에 구울 꼬치나 옥수수, 야채 등은 빼먹지 않고 사서 숙소로 돌아갔지요. 샤워를 마치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 후 직화로 구워 먹는 바비큐의 맛이란. 친구와의 여행 마지막 날이었기에 맥주를 한 캔씩 더 따며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었습니다. 방에서 좀 더 진지한 얘기를 해볼까 했지만 저희는 양치도 못한 채 그대로 기절해버렸습니다. 다음 날, 복닥복닥 바쁜 저와 달리 느긋하게 뭔가를 그리는 친구를 보며 초조해하며 “안 씻어?” “준비 안 해?” 은근 눈치를 주고 있는데, 그녀가 “다 했다!” 하며 종이를 제게 건넵니다. 저를 그리고 있었던 겁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된 친구와의 연. 성질 급하고 낯가림이 심한 저와 늘 느긋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친구. 상극인 듯 가끔은 서로에게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렇게 질긴 연이 지속된다라는 것은, 또 한편으론 우리가 꽤 비슷한 사람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인터라켄 역에 앉아 친구가 준 그림을 다시 한번 찬찬히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심지어 고향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재회해도 ‘보고 싶었다’라는 닭살 돋는 멘트 하나 없이, 또 실로 그리 반갑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어제 본 것처럼, 참 멋없게 “어 왔냐?”가 인사의 전부였던 우리. 사랑과 증오라는 극과 극의 감정이 한끗 차이로 줄타기를 하는 연인이나 가족과는 달리, 살짝 더 좋을 때도 살짝 더 미울 때도 늘 수평하게 무게를 맞추는 존재가 친구인가 보다. 너라는 사람과 어릴 때부터 친구가 되어 참 다행이야.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어. 서른이 되어 처음 만났더라도, 우리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을 거야.
그림 고맙다. 그림 말고도 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