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지막 유럽 여행지, 베를린에서의 반토막 여행기
2018.7.14~18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로텐부르크, 베를린 여행기
독일에 와서, 아니 이번 여행을 떠나오면서 처음으로 호텔에서 제공되는 무료 조식을 먹고 다시 올드타운으로 올라갔습니다. 셀카봉을 챙겨 오지 못해 그 예쁜 건물들과 사진을 함께 찍지 못한 후회가 막심하던 중, 한 기념품 가게에서 셀카봉을 발견하고는 올타쿠나 구매했지요. 어제 실컷 찍었던 같은 건물들에 이번엔 저를 포함하여 또 신명 나게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오늘 다시 봐도, 이렇게 아기자기 예쁘구나. 눈 오는 겨울이면 얼마나 예쁠까. 한참 돌아다니다 더블린 친구의 요청으로 Lindt 초콜릿 한 봉지를 더 사서 나오는데, 점원이 제가 어제 왔던 걸 기억하는지 초콜릿 하나를 더 넣어주어 감개무량했습니다. 베를린에서 만나는 친구와 나누어 먹으려, 로텐부르크의 상징 같은 디저트, 슈니발렌도 한 박스를 구매했습니다. 한껏 무거워진 짐을 이끌고 다시 숙소로 내려와 캐리어에 차곡차곡 넣은 뒤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친구가 아파서 오늘 베를린으로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녀를 위해 베를린 행을 택했던 건데. 친구는 미안하다며 호스텔 값을 지불해주겠다고, 내일은 꼭 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 환승지에서 기차가 20분 지연. 심지어 자리도 없어서 바닥에 앉아있었는데 옆의 어떤 친절한 아주머니가 한 시간 동안 자기는 레스토랑에 있을 테니 이 곳에 앉아있으라고 합니다. 그러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리는 어느 역에서 드디어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다음 열차 안 놓치게 예매 참 잘했다고 생각할 무렵, 다음 열차는 심지어 55분이나 지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필 3G도 터지지 않아서 아래의 스타벅스와 왔다 갔다 하며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겨우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 도착. 트램을 타고 친구가 잡아준 호스텔로 향했습니다. 1층에는 엄청나게 큰 펍을 2층부터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는 이 건물. 방방대는 사운드에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지요.
그런데 또 무슨 일이람. 제 이름으로 예약은 되어있는데 결제가 되어있지 않답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더니 그녀는 분명 카드 정보를 입력했다 합니다. 어쩔 도리가 없어 그 자리에서 호스텔 값을 지불하고는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오로지 친구를 위해 왔던 베를린이라, 아무 계획도 없던 상태. 일단 밖으로 나와 분위기 좋아 보이는 펍에서 급하게 일정을 짜야만 했습니다. 그 날 당장은 아프다는 이유 하나로 멀리서 베를린까지 날아온 친구를 바람 맞힌 친구가 이해도 가지 않고 서운한 감정이 마구마구 밀려왔었는데, 나중에 여행이 끝난 후에 친구가 급성폐렴으로 입원까지 했다는 걸 알게 되고는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더블린에 돌아온 이후에 호스텔 값을 두배로 부쳐주며 사과의 선물까지 직접 만들어 보낸 그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Dana를 만나기 더 어려워지겠지만 우리가 그때, 더블린에서 그렇게 나누었던 마음은 조금 더 오랫동안 서로에게 간직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다음 날, 친구의 병에 차도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를 약 €160을 주고 하루 일찍 앞당겼습니다. 너무 비싼 금액이긴 했지만 단지 친구를 만나러 온 곳이라 굳이 더 머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조식을 챙겨 먹고 기차를 타고 포츠담으로. 포츠담 상수시 궁전과 정원을 한 바퀴 돌며 노랗고 청록빛으로 은은한 멋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상수시 궁전’이라는 이름이 한국식 번역 체인 줄 알았는데 'Sanssouci'라고 버젓하게 스펠링 되어있는 것을 보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직접 도면을 그려 예술과 철학의 장으로 쓰였다는 이 궁전은 화려하진 않지만 누군가의 예술적 감각을 곤두세우기 충분할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당일 밤 비행기로 떠나기에 내부까지는 구경할 시간이 없어 다시 베를린 시내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갔습니다. 뇌가 작동을 멈춘 건지 잇달아 기차를 잘못 타고 짜증이 솟구치려는 찰나, 이어폰에서 노리플라이의 ‘버스정류장’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와 이내 분노를 잠재워주었습니다.
Curry 61이라는 곳에서 커리소시지와 감자튀김을 사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베를린 돔과 벽화 등을 구경하며 걸었습니다. 베를린이 가진 분위기는 뭐랄까. 검소했습니다. 유독 자전거를 탄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고, 고전적인 느낌보다는 힙하다는 느낌이 강했지요. 특히 제가 머물렀던 숙소 근처는 성수동을 연상시키는 사무실이나 가게들이 많고, 힙하게 자신을 꾸민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숙소 옆 보관함에서 캐리어를 되찾아 베를린 장벽으로. 생각보다 휑해서 뭐지? 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이 곳이 아니라 베를린 장벽 기념공원으로 갔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 유명한 ‘형제의 키스’ 벽화도 보지 못하고, 정말 가고 싶었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도 가지 못한 채. 공항으로 가는 마음은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더블린에 있을 동안은 마지막이 된 유럽 여행을, 친구 때문에 틀어진 마음으로 급하게 마무리하게 된 것이 못내 찜찜했지만 당시에는 그저 집에 가고픈 마음뿐이었습니다.'이번 베를린행은 여행이 아니었어!' 라며 언젠가 역사 여행을 주제로 잡고 꼭 다시 오리라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