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석영 Mar 14. 2021

건포도와 오나라와 송아지

그때의 너희들


  오나라에게서 연락이 왔다.

  거의 8년 만이었다.


  오나라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친해진 친구였다. 물론 본명은 아니다. 건포도, 오나라, 송아지. 중학교 때 각자의 이름을 따서 만든 버디버디 아이디다. 건포도와는 최근까지 같은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오나라는 갑자기 연락이 뚝 끊겼었다. 그런 친구들이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기억나지 않는 순간에 연락이 끊겨 버리는 친구들. 카카오톡 목록에는 있어서 이런저런 근황을 보내겠구나 짐작은 하지만 선뜻 안부를 묻기는 너무 멀어져 버린 관계.


  그런 생각은 결혼 전이 되면 더욱 극대화되는 것 같다. 어떤 목적 때문에 연락하는 게 아닌데 괜한 오해를 받을 것만 같으니까. 그렇게 놓쳐 버린 인연은 얼마나 많을까, 오나라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생각이 나서 건포도에게 연락처를 물어 메시지를 보냈다고, 오나라는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전화번호를 바꿔서 서로의 연락처도 몰랐던 것이다. 나도 얼마 전에 문득 오나라를 생각했었는데, 연락을 받으니 그저 기뻤다.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도. 어쩌다 그렇게 된 거냐고 오나라는 물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우리가 서로의 인생에서 자리를 비운 시간들을 요약해 나갔다.


  오나라를 생각하면 9.11 테러가 떠오른다. 나는 아무래도 저주받은 아이인 것 같다고, 자기 생일과 비슷한 날짜에 그런 참사가 발생했다고 오나라가 무던한 표정으로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런 건 너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오나라가 당시 겪고 있던 서글픔을 생각하며 입을 꾹 닫았던 것 같다. 오나라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들을 하나씩 넘겨 보면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순간 이후 오나라가 살아온 나날들을 유추해 본다. 즐거웠을 것이다. 누구에게든 사랑받았을 것이다. 오나라의 표정에 그렇게 쓰여 있다.


  하지만 우여곡절도 당연히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내로  우여곡절을 정리할 자신이 없으니,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소식만 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지금까지도 나를 떠올려 주고 연락할 용기를 내줬다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는  연락으로 우리가 예전 같은 사이가   없다는  안다. 다시 만나더라도 우리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먼저 포착하고, 지나간 세월을 쓸쓸히 통감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너희들이 어디엔가 무사히 안착해서 잘 살아가고 있음이

  나는 참 감사하다.


  중학교 때 친구들을 생각할 때면 늘 그들의 평온과 행운을 빌게 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떡만둣국의 실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