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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Mar 01. 2021

떡만둣국의 실체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설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한국의 명절이었다. 물론 한국에 있지 않아서 더욱이 명절 느낌이 나지 않는, 평소와 똑같은 금요일이었다. 한 몬트리올 한인 커뮤니티에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안내문을 받아 왔는데, CHINESE NEW YEAR라고 되어 있어서 한참 망설이다가 LUNAR NEW YEAR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는, 멋진 어머님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오전에는 아흐준도 나도 보통날처럼 각자 할 일을 했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떡만둣국을 끓일 준비를 했다.


 한국에 있는 우리 가족은 설날이면 떡국이 아니라 만둣국을 먹는다. 아침부터 피 반죽과 만두소를 만들어 두고, 점심을 먹고 나면 만두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엄마가 반죽을 소량으로 뜯어 기다랗게 말고 칼로 성큼성큼 잘라 낸다. 반죽 덩어리들을 밀대로 밀면 일정한 크기의 동그란 만두피가 탄생한다. 엄마의 오랜 경력을 방증하는 일정한 두께와 모양의 만두피. 그럼 우리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숟가락을 하나씩 쥐고 만두소를 적당히 넣어 가며 만두 모양을 빚기 시작한다. 해가 질 때까지 오직 만두만으로 무려 큰 쟁반 10개를 다 채우는 것이다. 그날 저녁은 당연히 만둣국이다. 남는 만두들은 냉동고행. 야들야들한 생만둣국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당일뿐이라며 아빠는 만두 알 20개를 가뿐히 집어삼킨다. 그렇게 대량 생산한 만두가 바닥나는 3월까지 아빠는 만두로 삼시세끼를 때운다.


 그건 사실 아빠의 엄마가 끓였던 만둣국이라고 했다. 엄마는 아빠의 엄마를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아빠의 엄마가 만들었던 만둣국을 약 30년간 비슷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할머니 만두랑 엄마 만두랑 맛이 똑같아? 아빠는 국물을 들이마시고서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사실 이제 그 맛이 기억이 잘 안 나. 그건 내가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아빠에게는 만두에 있어 어떤 정답과 오답이 나눠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거다. 만두에 대한 아빠의 집착은 이제 세상에 없는 엄마의 음식이, 엄마가 그리워서일 거라고 추정했었으니까. 그러니 '만둣국'이라는 것은 대대로 전해져 온 게 아니라 그저 아빠의 기억에 엄마의 솜씨를 얹고, 나와 동생의 노동력을 보태서 새롭게 공유하게 된, 오로지 우리 넷만의 설 의식이 된 셈이다.


 몬트리올에서 2명으로 공장을 가동할 자신은 도무지 없으므로 나는 엄마가 손질했던 재료들과 최대한 비슷한 재료들을 마트에서 수집했다. 튀겨 먹으려고 샀던 냉동 김치만두와 떡볶이 하려고 샀던 떡, 대파 대신 구한 쪽파. 최대한 기억에 의존하여 국물의 간을 맞춘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은 미각이나 후각이 아니라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한참 만둣국을 끓이고 있는데 아흐준이 계란을 넣어 달라고 했다. 엄마는 만둣국에 계란을 넣지 않지만 비싼 것도 아니니 그러기로 했다. 정확한 재료가 아니라 비슷한 재료로 끓여 낸 떡만둣국으로 나는 아흐준에게 나의 기억을 어렴풋이 나눠 준다. 또 한 번 변질된 맛이 새 가족에게 도착했다. 언젠가 아흐준이 혼자 만둣국을 끓이게 된다면 정확히 이 맛을 기억하려 애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기 가족들에게 이렇게 자랑하겠지. 이건 '송'의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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