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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Feb 23. 2022

F의 단어

서른




F: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더라니까요. 우리 아들 서른인데 자랑할 게 없다고.

나: 아니, F 씨가 어디가 어때서.

F: 이제 제 또래 친구들은 다 좋은 곳에 취직하고, 돈을 잘 벌잖아요. 자랑할 게 없긴 하죠.

나: 항상 열심히 살잖아요. 지향하는 가치가 있고.

F: 그런 게 명함이나 연금을 주는 건 아니니까요. 



F 씨는 예상한 연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외딴곳에 버려진 마음이 들었다. ‘이제 무얼 하지?’ 고민하다 말고 그는 충동적으로 편도 비행 티켓을 끊었다고 한다. ‘조지아’에 간다고 하기에 미국의 조지아주(州)를 말하는 거냐 물으니, 유럽의 아주 작은 나라라고 했다. 여행 중 잠시 머물렀는데 느낌이 참 좋아서, 언젠가는 다시 찾아가 오래 지내보고 싶은 나라였다고.


그렇게 그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낯선 나라로 떠난다. 카메라와 노트북만으로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이런 서른을 맞이할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 없는 까마득한 모양으로 말이다. 동생이 두 명이나 있는 F 씨는 동생들의 취업도 쉽지 않아 엄마의 걱정이 부쩍 더 커지는 것 같다고 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는 자리를 잡아야 마땅한 걸까. 바로 작년, 혹독한 ‘서른 앓이’를 한 나 역시 그의 마음을 얼마간 이해했다. 알 수 없는 초조와 불안. 그것이 너무도 식상하다는 게 견딜 수 없는 지점이기도 했다. 숫자에 복종하는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예상했던 곳에서 날 기다리던 적에게 기꺼이 항복하는 느낌이랄까. 맥주를 앞에 둔 서른 언저리의 사람들은 모두 패배했거나 패배하는 중이었고, 거처를 옮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전문 읽기 : https://a-round.kr/f의-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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