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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Feb 24. 2022

G의 단어

리셋








G: 열심히 살았고, 얻은 것도 분명히 있는데 이상하단 말이죠. 올해는 뭔가 좀 허무해요.

나: 그 마음,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아요.

G: 그냥 전부 다 깨끗하게 리셋하고 싶다니까요.

나: 리셋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G: 어디론가 확 떠나는 거? 음,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으려나?




기껏 고생해서 쌓은 한 해를 모조리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은 뭘까. G 씨는 요즘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싫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는 올해, 살면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을 웃으며 맞이하는 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거나 과한 요구를 했고, 상사는 그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상사와 단둘이 워크숍에 다녀오는 길에 G 씨는 자신에게 한 마디도 걸지 않는 그를 보며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는 사이에 갑자기 이별을 고한 남자친구는 올해의 완벽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최근에 다시 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떠올랐다. 주인공 조엘은 기억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가 전 연인인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워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기억을 지우다 말고 그는 클레멘타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완전히 없애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모든 걸 잊고 싶었던 그는 점차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며 도망 다닌다. 그가 그렇게 원하던 ‘리셋’을 피하겠다고.


우리 동네에 ‘라쿠나사’가 있다면 G 씨는 제일 먼저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완벽히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신이 나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에게도, 끝까지 남겨두고 싶은 아름다운 장면이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가 비슷한 노동을 반복하면서도 계절이 네 번이나 바뀌는 내내 두 발로 잘 서 있던 건 아니었을까.




전문 읽기 : https://a-round.kr/g의-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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